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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l 12. 2023

'...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떠나고 나니 보이는 것들

 이슬아 작가의 책 '끝내주는 인생'을 읽고 있다. 절반정도 읽다가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에서 글이 쓰고 싶어 졌고 '카타르시스'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부족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풀어보고 싶었다. 


  이야기는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 때문에 어리석어진 그녀가, 애서가들로부터 받은 숱한 환대로 판단력이 흐려져 군부대의 북 콘서트를 수락하는 경솔한 선택에서 시작된다.(어리석음과 경솔함은 작가 스스로의 표현임을 밝혀둔다.) 부대의 풍경을 묘사하는 서두에서 기시감을 느낀 나는 대대장과의 접견을 회상하는 그녀의 표현에서 완급조절의 탁월함을 느꼈다. '각 잡힌 군복을 입은 건장한 대대장은 (중략) 어떤 아우라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조금 더 지켜보니 아우라는 그의 내면이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그의 옆에 선 남자들이 갖는 긴장감 때문에 만들어지는 듯했다.' 같은 '역시' 그녀답다고 생각되는 글에서 그녀가 부대 강연의 실체를 파악한 뒤 터뜨릴 한방을 조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대대장 접견을 마치고, 기념 촬영도 끝내고 강연장으로 입장해, 약 삼백 명이 모인 용사들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책을 읽은 용사는 열명 이하일 것을 직감하고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이백 구십 명 앞에서 말을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할 모습에서 나는 이제 일어날 재앙을 예상했다. 상황 판단을 애써 유보한 그녀에게 강연장에 함께 노래하러 온 그녀의 가수 남동생은 상황을 파악한 뒤 태평하게 중얼거린다. "누나, 좇됐는데?  

 '누추한 무대에서도 누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강연을 앞둔 그녀의 글에서 나는 결국 소환했다. 몇백 명의 예비군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던 현역시절의 나를. 물리적 누추함이 아닌 강연을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강사 본인조차 원하지 않는 강의를 해야 하는 강사의 누추한 마음을 나는 조금 안다. 초급 장교시절 근무했던 나의 첫 부대는 6월 한 달 내내 예비군 훈련이 있었다. 수백 명의 예비군을 수, 목, 금 2박 3일간, 4주 연속 상대하는 것은 엄청난 강행군을 의미했다. 입교부터 집합, 인솔, 교육 등 무엇하나 결코 쉬운 일이 없었지만 내게 난이도가 가장 높았던 업무는 강의였다. 주특기 교육장에서 육성으로 백 명이 넘는 대부분 교육을 원치 않는 인원들에게 연속으로 몇 차례 교육하며 나는 절감했다. 현역군인의 견장에 기대어 현역군인을 대상으로 중대간부 역할을 수행했던 나의 부족한 역량을. 이슬아 작가는 어렵지 않게 말한다. 자신은 삼백 명을 장악할 아우라 따위는 가지지 못했다고. 

 현역 시절 내가 나에게 부여한 정체성은 나는 그조차 인정해서도 안될 사람이었다. 예비군 교육이 싫다고, 어렵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마음을 토로할 뿐인 일도 섣불리 하지 못했다. '짜증 나서 때려치우고 싶다'라고 푸념할 개인의 그릇을 가졌으면서, 간부로서 나의 위치를 생각했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여자 군인'의 정체성을 생각하자 어렵다고 말할 엄두가 안 났다. "여군을 뽑아놨더니 잘 못하더라."라는 가상의 뒷말을 만들어내며 나는 주춤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실존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몹시 연연했고, 그 소리가 행여 나로 인해 들린다는 것은 결코 안될 일이었다. 

 이슬아 작가는 말한다. 강연 무대 위로 올라가는 본인의 모습은 올라가기 싫다며 떼쓰는 마음을, 몸이 억지로 데리고 올라간 무대였다고. 차라리 남자나 확 중년이나, 아무튼 간에 비(非) 여성이고 싶었다고. 당시 나도 비(非) 여성이고 싶었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당시의 기억이 많이 희미해져 남아있는 편린적인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강의를 듣지 않으실 바에 차라리 주무시는 분들이 나았다. 본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도 큰 소리가 아니라면 괜찮았다. 나와 상관없다면 조금 큰 소리도 괜찮았다.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강의 중간중간 예고 없이 치고 들어오는 강의와 관련 없는 질문이나 대화였다.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매뉴얼에 없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나는 점점 경직되어 갈 뿐이었다. 숙지한 내용들을 누가 듣는지도 모른 채 강의하며 강의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누구보다 기다렸다. 간혹 보이는 강의를 경청하시는 분들은 엄청나게 힘이 되었고, 그쪽을 향해 강의했다. 혼자서 그 인원들을 통솔할 자신이 없는 나는 교육장 중간중간 현장을 함께 통솔하는 다른 간부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떠나고 보니 보인다. 그 시간 속 나의 마음들이. 

 다행히 이슬아 작가는 북 콘서트 형식의 힘든 강의를 마친 뒤 남동생과 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나아졌고,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한 사람만을 위해 노래를 부르며 그날을 마무리 짓고 부대를 떠난다. 그녀가 조금 나아진 마음으로 부대를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제라도 그 시절의 나를 배웅하고 싶어졌다. 조금 초라하고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강의를 마무리 짓고 무대에서 내려와도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어떤 글은 즐겁고 가볍게 써낼 수 있는 반면, 어떤 글은 쓰면서 심적 부담이 따르거나 힘든 글이 있다. 이 글은 후자였다. 한때 몸담았던 조직이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으며, 조직이 아닌 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 완급조절이 신경 쓰였던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을 많이 써야 했던 이 글을 쓰고 싶고 마무리 짓기로 결심한 이유는 왠지 이 글은 나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저의 글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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