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당신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군인시절 분기별로 진행되는 '여군 간담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보통은 소속된 부대나 대대에서 부대장님을 모시고 소규모로 진행되었지만, 사단 예하 대대에 근무할 때는 가끔 사단장님이나 참모장님 주관으로 사단 예하 60-70명 안팎의 전체 여자 군인 대상으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하면 남은 업무는 야간에라도 시간 내서 해야 하고, '여자군인'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나이도, 계급도, 업무도 제각각인 업무로도 엮이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간담회는 성격상 어색하기도 해서 참석이 달갑지 않았다.
전역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마지막으로 사단 여군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날따라 뉴페이스가 많이 보였는지 주관하셨던 참모장님께서는 한 사람씩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내 차례가 되었다. 소속과 이름을 말하고 의례적으로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맺음말을 덧붙이고 단상을 내려오려던 차에 참모장님은 말씀하셨다. 곧 전역하는 사람이 무슨 앞으로 친하게 지내냐고. 훈련 간 한번 마주쳤던 것이 전부였을 그분의 눈썰미에 놀라며 어색하게 인사를 마무리지었다.
당시의 마음은 이랬다. 내 기준이지만 의례적이라 여겨지는 자리에서 인사하며 곧 (아무도 묻지 않은) 전역한다는 말을 덧붙이는 건 민망하기도 했고, 불필요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싶은 마음 등의 복합적인 마음으로 튀지 않게 그 자리를 넘기려 했던 마음이었다. 나는 계급에 적합한 행동을 연출하려 노력했을 뿐, 사람들 앞에서 대본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늘 어색했으니깐.
여전히 나는 '의례적인'과 '진짜' 속에 살아간다. 때로는 '의례적인 말'을 때로는 '진짜 말'을 기대하며 질문을 한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질문과 답변의 함의를 예상하면 그 사람에 대한 친밀도와 애정이 드러난다. 잘 지냈냐는 질문을 하며 상대가 진짜로 어떻게 지냈는지 듣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단순 '잘 지냈다.'는 말을 듣기 원하는지. 누군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 의례적으로 '괜찮다'라고 답변하는지 아니면 '나 사실은 괜찮지 않아.'라고 답변하며 괜찮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지. 의례적 답변 속에는 어쩌면 자신감 결여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나의 상황에 관심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가끔은 상황을 살핀다. 정말 나에 대해 궁. 금. 해서 묻는지, 아니면 의도적 질문인에 따라 상대가 원하는 답변을 내놓으며 쓸쓸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상대에게 예상한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봐 질문 자체를 망설일 때도 있다. '괜찮아'라는 답변을 듣고 마음 편히 넘기고 싶은데 괜찮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 해줄 것도 없는데 마음만 불편할까 봐. 상대에 따라 다르지만 어쩌면 '식사하셨나요?'도 종종 그런 류의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상대의 특정 답변을 기대하며 질문할 때 상대에 대한 애정이 가늠되며 쓸쓸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친구를 만났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친구지만 단 한 번도 다툰 적은커녕 대부분의 시간 서로 명랑하고 밝은 모습만 공유한 친구였다. 그날따라 몸이 좋지 않았지만 취소하기 미안했고, 결국 약속장소에 나갔다. 음식은 잘 넘어가지 않았고 각자 주문해서 나의 몫이 남아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 음식이 신경 쓰였다. 최대한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출하며 끝내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친구가 안 볼 때 아마 나의 남은 음식을 감춰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오랜 친구였지만 '나 몸이 좋지 않아.'라고는 쉬이 하지 못했다. 상대의 반응을 나는 미리 걱정했던 것일까. (물론 친구는 전혀 그러지 않겠지만)'그렇구나.'라고 혹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느낌에 내가 상처받으면 어떡할까 하는 마음과, 즐거워 보이는 친구를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아무렇지 않은 척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웃으며 헤어져 집에 와서 뻗었다. 이런 나를 결국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의 사업장에 남편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볼일을 마치고 인사도 끝내고 나왔는데 주차할 때 차 안에 열쇠를 넣고 문을 잠갔음을 깨달았다.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기다리는 동안 인사까지 마치고 나온 친구의 바쁜 사업장 한편에 다시 들어가 앉아있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그만큼의 신경을 쓰게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행여 일하느라 바쁜 친구에게 일말의 번거로움을 안겨줄까 봐, 친구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까 봐 가장 신경이 쓰였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혹시 '친구네 다시 들어가는 게 어렵나.'라고 생각할까도 신경 쓰였지만, 결국 바깥에서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 콜을 기다렸고, 꽤 친한 친구였음에도 친구가 바깥에 있는 나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랐다. 보고 행여 신경 쓰일까 봐, 그 모습에 내가 상처받을까 봐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보험회사는 금방 도착했지만 잠깐의 시간 혼자의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모든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도 아니고, 친하고 안 친하고의 문제도 아니고 상대의 성향과 나와의 케미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살다 보면 상대를 품어주는 마음의 쿠션이 넉넉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나는 이렇다고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행동과 말투와 눈빛을 통해서 그 사람의 그릇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그가 친구든 아니든 '진짜 말'을 편하게 한다.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라고. 어쩌면 '의례적인'과 '진짜'를 구분하는 것은 때로는 상대에 대한 애정도가 아닌 듣는 이의 성향과 관계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성향의 사람을 편하게 느낀다.
진심이 아닌 말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살다 보면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때로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이에도 '의례적인 답변'과 행동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이런 복잡한 내 모습을 떠올리면 싫은 감정이 들지 않는다. 가끔은 피곤한 단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장점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그냥 이런 나를 받아들인다. 가끔은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가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태어난 이상 잘 살피고 격려하고 보듬으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