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버린 나의 시간들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

by 수진

'집에 가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며 마음속에 떠올랐던 생각이다. '집에 가자. 집에.' 그 말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복하며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닌 곳에 집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집에 가자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마음이리라 생각하며 무의식 속 '집'이라 여겼을 한국에 왔다.

가족들을 만난 반가움은 컸지만, 한동안의 일상이 지워졌던 곳의 '나'는 조금 어색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뒤, 잠시 혼자의 시간을 위해 집을 나섰다. 몸은 피곤했지만, 왠지 모를 감정적 침체와 서글픈 기운을 띈 마음을 눌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으로 익숙하지만 조금 서먹해진 지역을 보며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비어버린 나의 시간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지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채워졌을 나의 시간들의 '부재'에 조금 슬퍼졌다. 일본의 삶이 선물로 주어졌지만, 당연하게도 가질 수 없던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웠다. 한때의 삶이 머물던 곳을 보니 그 부재가 확연해 슬펐나 보다.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같은 사람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한 시절의 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닫자 그 시절의 그 아이가 그리울 것 같아 함께하면서도 그리운 날이 있었다. 같은 이유로 언젠가는 이 시절의 내가 그리울 것 같아 슬펐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지만 잡을 수도 없는 시간의 유한함 때문일까. 나의 삶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단히 현실에 발 붙이려 노력하지만, 실체가 없는 곳을 떠다니며 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것 같은 날이었다.

진한 카페라테를 한잔 사들고, 책 구경과 옷 구경도 하며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어둠으로 변해가는 시간은 두려웠다.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것 같은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을 보며 서서히 찾아오는 어둠의 시간은 사람을 끌어내리는 공허의 기운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그 공허를 잊기 위해 무언가에 그렇게 자신을 쏟으며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나의 삶의 공허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었을까 생각이 깊어지는 저녁이었다.

난 집에 있어도 또 집에 가고 싶었거든요. 아주 어릴 때, 해가 질 때쯤에 방에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으면 심장으로 이상하게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요.

그러면 방금 밥을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배가 고픈 거 같기도 하고 가족들이랑 엄마랑 분명히 엄마랑 같이 있는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드라마 '인간실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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