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에 네가 있다.

너를 사랑하는 시간

by 수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엄마가 울었기 때문이다. 엄마랑 나는 눈물샘의 어딘가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한참을 엄마가 울 때마다 나도 울었다.-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가끔 물건은 사람의 어느 부분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쩌면 물건은 본인보다 본인의 본질의 어떤 부분은 더 직접적으로 보여 줄지도 모른다. 남편이 좋아하는 pc, 노트북 등의 각종 전자 기기들과 아이가 사랑하는 레고블록과 전차, 자동차, 비행기, 기차 등등의 온갖 종류의 탈것류를 떠올려 보면 그 물건들은 남편과 아이 본인보다 그들의 어떤 면을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떨까. 요즘 가까이하는 물건인 노트북, 안경, 커피잔을 떠올려 본다. 주변사람들이 그 물건들을 통해 떠올리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물건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일까. 문득 물건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그 감정에는 일말의 슬픔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의 기억이다. 무슨 일인지로 몹시 떼를 부린 아이를, 달래서(혼내서;) 가제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재우러 보냈다. 아이가 잠든 뒤 가제수건을 보자 물건의 주인인 아이가 떠올랐고, 저 조그마한 아이가 고작 갖고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뭔지 모를 안쓰러움이 묻어 나왔다. 그때였을까. 누군가의 물건을 보면 떠오르는 그 사람의 이미지에는 안쓰러운 느낌이 묻어있다고 여긴 것이.

주변에서 물건에 깃든 누군가의 슬픈 모습을 가장 명확하게 알던 이는 엄마였다. 오래전 언니가 유학을 떠난 날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공항까지 배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언니의 책상을 정리하며 조금씩 훌쩍이던 엄마의 울음은 격한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언니가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떠난 날이면 엄마의 울음은 매번 반복되어 나는 언니에게 쓰던 물건들 좀 정리하고 떠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무리 물건들을 미리 정리해도 엄마는 어떻게든 언니와 연관되는 물건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았다. 그때 엄마의 세상 모든 곳에는 외국으로 떠난 언니가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일본에 오기 전 비자를 기다리며 한동안 친정에서 지내다 마침내 일본으로 온 날 엄마는 말했다. 떠나는 나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남겨진 내 물건들을 보니 미칠 것 같아서 재빨리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버렸다고. 그리 오래지 않은 일임에도, 나는 일본에 잘 도착했다고 해맑게 영상통화를 연결했다가 울면서 등장한 엄마의 얼굴을 마주해서 당황했을 만큼 나는 엄마의 마음을 몰랐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1박 2일 캠핑을 떠났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하루를 보내게 된 아이는 오래도록 걱정하다가 마침내 울면서 캠핑을 떠났다. 아이가 우는 모습으로 떠났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를 배웅하고 가라앉은 기분으로 돌아와 아이가 먹다 떠난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먹은 것이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더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눈물이 걷잡을 수 없게 쏟아졌다. 나는 그 순간 비로소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이 떠난 뒤 남은 물건들을 보며 울던 엄마의 마음을. 살면서 흘려버린 이미지의 잔상들도 무의식 중에 남아 있었는지, 드라마 속 싱글맘이 아이를 아이 아빠에게 보낸 뒤 빈 집에서 아이의 흔적들을 마주한 뒤 울던 모습과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마음까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내게 몰려왔다.


뜨거웠던 해가 넘어가 잠시 산책을 나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아이가 있었다. 집 앞에서 장수풍뎅이를 보자 그것을 보며 좋아할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고, 함께 걸었던 길에도 아이가 있었다.

나의 친구이자 같은 반 아이 엄마인 분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이 셋을 키우는 그는 다른 아이도 둘이나 있고 여러 번 키워봤으니 당연히 나보다 담대할 것이라 여긴 것은 오산이었다. 아는 맛(?)이 더 무서운 이유일까. 그의 문자를 보며 모국어는 아니지만 같은 색깔의 애틋함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있는 아이를 마주하며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사슴벌레를 발견해서 데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그의 전화에 나는 알았다. 그의 모든 세계 곳곳에도 아이가 있음을.


덧. 두 번째 브런치북 '나의 고요한 케이터링'이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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