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의 유리구슬

그럼에도 희망을

by 수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개념들을 글로 선명하게 풀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에게만 구체화되어 있고 손에 잡힐 듯한 그 생각들을 적확한 단어들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나의 세계의 기반이 조금 더 견고해지고 구체적이 되어 사는 일에 조금 더 힘이 되지 않을까 해서. 어떠한 일을 계기로 관계의 손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유리구슬에 관한 글을 풀어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유리구슬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 그 개념에 관해 생각해 본 때는 한 상관과 함께 업무를 하던 때였다. 당시 나의 대대장님이셨던 그분은 좋은 분이셨다. 긍정적인 관계로 일을 하던 그분과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한 건 보안점검을 준비하며 내가 속해있던 부서와 부딪침이 잦아지던 시기였다. 하나둘의 지적으로 물꼬를 갈등은,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 고성과 질책이 오가며 절정을 맞이했다. 그때였을까. 문득 깨진 유리구슬이 떠오른 것이.

관계의 깨어짐을 경험하는 것은 일종의 수동적 개념이었다. 구슬을 깨뜨린 것이 아니고 깨짐을 당한 것처럼, 이제 이분께 마음을 닫아야겠다는 능동적 결심에서 비롯된 단절이 아닌 저절로 마음이 닫히는 수동적인 단절을 경험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사히 보안점검을 마치고 이어진 식사 자리의 불편함과, 마주침을 가급적 최소화하고 싶었던 마음 등이 단편적으로 기억난다. 돌아보니 어느 쪽도 서로를 진심으로 미워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단절되었다고 생각한 관계에는 회복이 있었고, 그분과의 개인적 인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훗날 그분이 대대장 보직을 마치고 전출한 뒤, 동료들과 먼 길을 찾아가 만나 뵙기도 했고, 이제까지 종종 안부를 묻고 조언을 구하는 등의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관계 회복의 예지만, 그분과의 관계를 표본으로 삼기에는 살면서 만나는 인간관계의 형태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나는 과연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는 구슬이 깨어진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다툼'을 싫어한다. 다툼 자체도 싫고, 거기서 오는 불편함도 싫다. 불협화음속 암묵적 불편함이 흐르는 관계도 견디기 어렵고, 직접 격하게 충돌하는 전면전(全面戰)은 최악이다. 겪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는 것도 싫다. 싫은 관계가 있다면 정면 돌파보다는 무시나 외면을 택한다. 안 볼 수 없는 관계라면 최대한 참고 참다가 더 이상 그러한 나를 견딜 수 없을 때, 그때는 상하고하를 막론하고 건의를 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최후통첩의 심정으로 비장하게. 수없이 머릿속으로 상황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거듭해 본 뒤, 긴장감이 내게도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힘겹게 말을 꺼낸다. 이런 부분이 나는 심하게 불편하다고.. 그 후에는 더 이상 내가 손쓸 수 있는 일은 없으므로 상대의 반응과 상대와 함께 보낼 앞으로의 시간에 맡긴다. 덕분에 그나마 충돌을 최소화하며 살 수 있었다. 그 전략에도 한계가 있었으니 인간관계가 상호적임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충돌을 피한다고 해서 상대가 돌진하는 관계의 충돌까지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 나는 들이 받혔다. 때로는 살짝, 때로는 세게, 가끔은 아주 세게. 어떨 때는 뒤통수를. 좋아하지 않는 상대의 경우 그것으로 관계가 종료되니 기분은 몹시 나빠도 큰 타격은 없었다. 공동체나 직장 등으로 엮여서 계속 봐야 하는 관계라고 해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덜 괴로우니깐. 하지만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상대의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의도치 않게 들이 받혔지만, 그 관계를 버리고 싶지 않을 때, 하지만 관계 속 유리구슬에 금이 간 부분들을 어떻게 할지, 혹은 그것이 깨졌을 때 과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부분에서 나는 막막함과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동안 그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는 모처럼 덥지 않은 아침이었다. 본격 여름이 와서 달리지 못해 달리는 감을 잃어버리기 전에 하루라도 달리기 위해 나는 달리러 나갔다. 비 온 뒤의 상쾌한 아침공기 속에서 달리기를 마치고 숨을 고르며 집으로 돌아오려던 때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깨어진 유리로 무엇인가를 만든 얼마 전에 읽은 소설의 누구였는데 기억이 가물 가물 했다. 저녁이 되어 나는 마침내 '누경'을 떠올렸다. 전경린의 소설 '풀밭 위의 식사'에 등장하는 '누경'이. '유리'로 씻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겪었지만(물론 그녀가 겪은 아픈 일과는 비교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유리를 사랑하고,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그녀가. 그 책에서 유리가 다뤄지는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나는 불현듯 그 부분을 다시 읽고 싶었다.

'1200도의 고열에 녹은 유리는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고 부드러웠다.(중략) 모든 폭력의 장소에서 유리는 가장 먼저 깨어진다. 유리가 깨어질 때 인간의 마음도 부서진다'

'커튼 자락은 진열장 위에 놓인 초록 유리병을 휘감아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흔들리지 말라고 물까지 묵직하게 담아둔 유리병이 퍽, 하고 물을 쏟으며 깨지더군요.(중략) 나는 종이상자를 찾아내 유리조각들을 담기 시작했어요. 미세한 조각까지 남김없이요.'

'유리조각들을 1200도의 고열 가마에 넣었다. (중략) 녹인 유리조각의 양은 아주 적었다. 젤리 상태의 녹색 유리를 긴 쇠파이프 끝에 둥글게 뭉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중략) 밑이 넓고 물결무늬가 흐르는 녹색 화병이 완성되었다.'

주인공이 편지 쓰기와 일기 쓰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시점이 변화하는 부분은 차치하고, 깨진 유리로 기어이 새것 심지어 가히 아름다울 것 같은 것을 만들어 내던 주인공의 모습이 생각났고, 그 부분을 나는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 속에 있던 그 부분이 떠오른 것을 보니, 내가 원하는 답은 그쪽이었음을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유리구슬이 있다. 아주 얇은 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리구슬이. 시간이 지나며 친분이 쌓이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 조금씩 유리가 두꺼워지는 유리구슬이. 때로는 금이 가고 심하면 깨어질지라도 상대를 향한 마음이 진심이라면 깨짐을 봉합하고, 때로는 더 아름다운 형태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유리구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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