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상과 취향을 들키는 일

따뜻한 침범

by 수진

후쿠오카(福岡)는 한국에서 접근이 용이한 편이라 이따금 가족이나 지인이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집에 묵을 만큼 가까운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 나로서 신경이 쓰이는 일은 나의 일상의 루틴이 깨질 것에 관한 염려이다. 애초에 그다지 부지런하거나 계획적이지 못하는 내가, 풀어지지 않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루틴이 있는데 그것들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변경될 소요가 적은 오전 시간대에 대부분 몰려있다.

스스로가 주도권을 잡고 일련의 루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해야 그 하루를 조금은 손에 쥔 느낌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나'의 하루가 아닌, '어떤 날' 속의 내가 되기 쉬워 웬만하면 일상의 루틴을 느슨하게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노력을 요하는 일들은 습관이 들기까지는 오래 걸려도, 한번 그 끈을 놓아버리면 금세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다시 잡기 어려워질 것 같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러한 루틴들은 혼자만의 의식으로 충분하기에, 누군가의 방문으로 일상을 함께할 때 알려지게 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건너뛰어버리면 일상의 흐름이 깨질 것 같아 미리 해치우기 위해 평소보다 더 수면시간을 줄일 때도 있다.

하나의 이유는 ~하는 것 치고는 ~하다 내지는 ~하는 것 치고는 딱히 ~하지 않다고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책을 자주 읽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치고는 딱히...'인격 수양이 덜 된듯하네, 아는 것이 별로 많지는 않네' 등의 시각이라던가, 자주 달리는 것처럼 보이던데 달리기 실력은 '딱히 좋지는 않네. 많이 뛰지도 않네' 등으로 서로 간의 기준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오해가 덧씌워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또한 혹시 모를 '과대포장'에 대한 부끄러움을 미리 경계하는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못한데 (의외로) 부지런하다, 성실하다고 여겨지는 일, 그리고 때로는 성실함=재미없는 사람=바른생활 삶( → 물론 이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임을 안다.)으로 여겨질 것에 대한 방어 등으로 나의 일상의 모습이 알려지거나 왜곡되게 읽히는 것이 싫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의 숙박 방문이 생기면 나만의 스케줄을 재 편성 하거나 고심했다.


동생이 놀러 왔다.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애정의 주관적 척도를 따진다면 상당히 앞쪽에 있을 그 아이의 방문에 앞서 먼저 고심한 부분 또한 '나의 일상 루틴'에 관한 부분이었다. (애정의 척도를 덧붙인 이유는 누군가가 싫어서 방문을 꺼리지는 않지만, 그만큼 개인 생활을 중시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물론 모. 든. 방문자가 반갑지는 않을 수는 있겠다.) 어찌 됐던 나는 모두가 깨기 전에 서둘러 이른 아침 평소의 루틴대로 움직이고, 달리기를 나가기 위해 준비했다. 나의 달리는 생활에 관해 알고 있던 동생은 함께 달릴 것을 제의했고, 달리는 페이스를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할 것에 관한 염려는 있었지만, 기꺼이 함께 나갔다.

혼자 달리던 길을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아마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으리라 여겨지지만, 달리며 나의 일상이 머무는 장소들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일은 꽤 즐거웠다. 덕분에 달리는 모습도 처음으로 사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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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늘 하늘이 예쁘다. 인생샷을 찍어 준다는 동생에게 달리기 사진도 선물 받았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동네 아지트에서 글을 쓰다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정확하게는 목격되었다. 나의 글을 공개하는 것에 관해 약간의 부담은 있었지만 고민 끝에 친구에게 내가 쓴 글을 공유했고, 친구는 글과 책에 대한 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이곳에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ulove/111

그리고 여름을 보냈다. 친구는 여름동안 아이들과 함께 '마츠시마(松島)'라는 도시와 그 도시의 수족관에 다녀왔고, 나와 아이에게 '오미야게(お土産,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념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방의 특산물(차, 과자 등)을 사주는 선물)'를 주었다. 선물 받은 앙증맞은 펭귄모양의 쿠키와 함께 내 이름이 쓰인 작은 봉투를 열어보니 놀랍게도 아름다운 책갈피였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생각하며 골랐을 아름다운 해파리 책갈피를 보자 마음에 책갈피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온기가 퍼졌고, 그 온기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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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물건. 아름다운 북마크는 오래오래 나의 소중한 독서 조력자가 될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상이나 취향이 발각! 되는 일은 부담이 따를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기쁨이 동반되는 일임을 겪었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어보자 생각해 보았다.

행복은 일상의 어떤 순간 문득문득 찾아온다. 언제나 깨어 있기를 소망하지만, 그 깨어있음이 글을 쓰고 삶을 사랑하기 위함이었다면 이번에는 일상 속에 반짝이는 행복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깨어있기를 소망해 본다. 행복이 왔음을 바로 알아채고, 그것을 만끽하는 일.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있을까. 나를 스쳐간 일상의 아름다움을 곱씹어보니 다시 따뜻함이 몰려온다. 아름다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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