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찾는 여정

‘만남’이 내는 향기

by 수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임관 직후 군사교육 기관에서 병과 교육을 받던 시기였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받으며 존재만 인지하고 있다가 복도를 지나며 가까이에서 보았고, '잘 생겼네.'라고 한번 생각했을 뿐 특별히 관심은 없었다.('잘생겼다'는 주관적 기준임을 밝혀둔다.) 서로 간에 접점이 없어 개인적인 대화를 했던 기억도 없었지만, 인연이 끊기지 않은 것은 '생일'로 인함이었다. 교육기관에서 생일을 맞은 우리는 서로의 생일이 같음을 알았고, 그 후 1년에 한 번 생일날에 축하 인사를 주고받았다.

생일 축하 문자 속에서만 존재했던 '하나의 몸짓'(시인께서 고른 무척 아름다운 '시어'지만, 성격상 오글거리는 표현임에도 문맥상 이렇게 쓴다.)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구체적 인물이 된 것은, 가까운 부대에 근무하게 된 뒤였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몰랐었고, 실재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어쩌면 나의 세계에는 실재(實在) 하지 않았던 사람이 실재하는 사람이 되며 그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살면서 만남이 ‘꽃’이 되는 일을 겪는다.

동생이 결혼을 했다. 동생이 결혼한 후 올케와 조카(동생의 아기)는 대체로 가족모임을 통해 다 함께 왁자지껄한 속에서 짧게 얼굴을 보았고, 일본으로 건너온 뒤 만날 일이 더욱 줄게 되었다. 예쁘지만, 좋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1:1의 관계를 맺기에 시간과 여건이 제한되었던 동생의 가족들이 동생과 함께 일본에 놀러 왔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동생의 가족은 내게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존재감이 뚜렷해진 각각의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 일이 꽤 기뻤다.

'우리는 타인을 만날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나. 우리 일상에 남이 앉을자리라는 것은 얼만큼인가. 만나서 마주 앉아 이야기해도 진짜로는 안 만나지는 만남도 많은 것 같았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위의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조금 탄복했다. 만났는데 진짜로 안 만나지는 만남을 안다. 함께했던 시간이 길었음에도 실제로는 함께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을 사람이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나의 세계에 실재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실재하는 사람이 되는 선물 같은 기쁨도 안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누군가가 '꽃'이 되어가는 것을 찾는 여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여정에서 만난 '꽃'의 빛깔과 형태는 한 가지로 규정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동경의 이름으로, 연대의 이름으로, 존경의 이름으로, 선의와 나눔의 이름으로, 격려의 이름으로 각각에게 맞는 아름다운 형태로 피어날 누군가와의 만남을 떠올려본다.

이미 이루어진 만남들과, 새롭게 피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만남도 떠올려 본다. 그 만남으로 서로가 성장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드물 거라고 생각하니 문득 그 일이 너무 귀하고 좋아서 조금 슬퍼지려 한다.

대부분의 날들 각기 다른 이유로 글을 쓰지만, 쓰면서 오늘의 글의 이유는 이것임을 깨달았다. 내 안에서 '만남'에서 받은 아름다운 기운을 길어 올리기 위해.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그 아름다운 기운의 향기를 글을 통해 남기기 위해 오늘의 글을 쓴다.

다시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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