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
한국에 올 때 고민 끝에 챙긴 것은 노트북이었다. 조금씩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쓰기'의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고, 익숙한 장비가 편할 것 같아 노트북을 챙기고 싶었다. 망설인 이유는 길지 않은 일정인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과, 현재까지 글쓰기의 성과에 비한 액션이 과도해 보일까 싶은 마음, 다른 즐길 것들 틈에서 글쓰기에까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었다. 그럼에도 챙겨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챙겨 왔다. 현재까지 그것을 굉장히 잘 한 선택이라 여기고 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글쓰기의 장소도 낯을 가린다. 한국에 오니 그동안 일본에서 쓴 글들이 낯설었다. 다시 대면하는 나의 글은 좀 더 객관적으로 보였고, 몇 편을 읽어보며 글의 호흡을 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이 조금 깊어질만하면 이내 숨을 참지 못하고 자꾸만 내뱉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글이 아늑하지만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 이런 의미였을까 문득 생각해 보았다.
글쓰기의 장소가 바뀌니 '브런치'를 통해 일본에서 알게 된 분들도 살짝 낯설게 느껴졌다. 텐션이 평소와 많이 달라져 있어서일까. '브런치 스토리'의 세계에 머물던 일이 다른 세계의 일 같았다.
발행한 글들의 편수를 얼마 정도 감추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지나간 글이 부끄러울 만큼 구리거나 형편없어서는 아니다. 누구나 서툰 시기가 있으니 지나간 글에 관해 질적인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발행한 편수에 비해 '적다'라고 여겨지는 성과가 의식되었다.
'이제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어디서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까.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 등의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 보려고 저장해 둔 '이슬아 작가'의 기사를 읽었다. 예스 24가 회원 40만 명을 대상으로 한 '2023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의 투표에서 1위에 오른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였다. 작가는 7년간 '어딘글방'에서 글쓰기를 배우며 열등감과 질투와 시기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고 그 치열함 속에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법도 '빡세게' 배웠다는 그녀의 인터뷰는, 마음 깊이 잠재되어 있지만 말하기는 물론 쓰기도 어려운 나의 의식 중 어딘가를 예리하게 찔렀다. '어딘글방'의 이슬아 작가의 쟁쟁한 동료들 리스트를 보며 '어딘글방'이라는 곳이 몹이 궁금해졌고 아직도 그곳이 운영되고 있다면 당. 장.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검색은 '어딘글방'의 스승인 어딘(김현아)님의 기사로 이어졌고, 읽다가 한 구절의 '빛'을 발견했다.
“글쓰기는 매주 향상되지 않는다. 지지부진 지리멸렬의 답보 상태가 몇 달 혹은 해를 넘기기도 한다.… 진척 없는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어느 날 ‘점핑’의 순간이 온다. 지난주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글이 그야말로 짜잔 하고 나타난다.”
'점핑'이라는 말에 내게도 '반짝' 희망이 깃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언젠가는 내게도 이 시간들이 쌓여 점핑하는 날이 오리라 희망을 갖기로 했다.
한 가지 의문은 든다. 무소속인 나는 나의 글의 부족함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어찌 됐던 나는 점핑을 갈망하며 '글쓰기' 책을 주문했다.
가끔씩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주 비주류의 삶을 살아서일까. 언제나 보이는 곳 너머의 세상을 꿈꿨다. 가본 적이 없던 그곳이 그리웠다. 내 머리로 꿈꿀 수 있는 너머의 세상에 닿기를 나는 소망한다.
호흡의 한계를 뛰어넘어 내 속으로 깊이 아주 깊이 들어가 보리라 생각해 본다. 절대로 질식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세계에 닿아 그 안에서 아름다운 글을 길어오기를 꿈꿔본다. 그 아름다운 글들을 펼쳐내며, 어느 날 문득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쉼 없이 '점핑'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