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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12. 2023

아름다운 중독

손끝에서 ‘나'로 피어나는 과정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는지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을 이제 조금 이해한다. 내가 보내는 시간은, 나의 정체성이자 우선순위의 척도라는 것을.

 언제나 내게 손꼽게 소중했던 가치는 '시간'이었지만, 육아를 시작한 이후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 절실히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밤의 시간은 특별했다. 낮의 시간은 의무감에나마 생산적으로 보내려 노력하지만, 밤의 시간은 원하는 것을 하며 나를 위해 보내고 싶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적어 ‘내’ 삶에서 '내'가 소외되고 삶이 비어갈 것이 싫었다.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따라 밤의 시간을 채우던 행위도 다양하게 변하는 것을 겪으며, 누군가 쓰는 시간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몸으로 이해했다.  

 한창 신생아 육아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는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었다. 긴 시간 집에 있어서 답답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밤이 되면 육아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미처 분출되지 못한 사회적 에너지가 쌓여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구독하던 신문은 그제야 차분하게 읽을 여유가 생겼고, 낮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 빌려온 책을 읽으며 파도치는 마음을 추슬렀다. 얼마 후 취업해서 일을 시작하니 차라리 숨통이 트였다.

 한동안은 넷플릭스와 맥주와 함께 보내던 시간이 있었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던 시간이었지만, 절제하지 않으면 다음날의 컨디션까지 침범해 맥주도, 드라마 시청 시간도 절제가 핵심이었다. 기약 없는 일본 비자를 기다리던 밤 넷플릭스를 보고 맥주를 마시며 한 시절을 넘겼다.

 최근에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단연... 글쓰기와 함께 보내고 있다. 조금만 쓰다가 마무리 짓고 다른 일을 하려고 보면 금세 밤 12시를 훌쩍 넘김을 몇 차례 경험했다. 

 쓰다 보면 마음이 향하는 곳이 보이고, 마음의 소리가 들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알게 되어 자꾸만 쓰고 싶어 졌다. 그 시간은 비로소 ‘나’ 자체가 되는 시간이었고, 그것으로 충만했다. 나는 예감한다. 아마 이 시간과 좀처럼 헤어질 수 없으리란 것을. 그것은 아름다운 중독이었다.


 최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은 무엇을 쓸까에 관한 고민이다. 조금씩 나만 쓸 수 있는 느낌의 ‘나의 글‘ 을 써 간다는 생각은 드는데, 무엇에 관해 쓸지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글이 있다. 읽다 보면 ’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라는 부러움과 선망이 느껴지는 주제를 다루는 글이.  나 역시 그렇게 나만이 쓸 수 있는 주제를 찾고자 소망하며 써나간다.

 한때는 ‘브런치 스토리’에 조차 완제품의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차피 완벽할 수 없을뿐더러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미숙함이 드러날지라도 괜찮다. 수도꼭지를 틀기 전에 물은 절대로 나오지 않으므로, 여물지 못한 생각이지만 글의 흐름을 내 의지로 끊고 싶지 않다.

 조금씩 나의 글이 흘러나오는 비로소 내가 되는 시간에서, 비로소 나만의 이야기들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을 담아 오늘도 나의 수도꼭지는 쉼 없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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