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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10. 2023

'내성적(內省的)' 성격에 대한 애정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기

 소대장님은 '내성적'이다 아닙니까

 소대장이 된 지 오래지 않아 소대원 아이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뜻하지 않은 순간 갑자기 "소대장님은 내성적이다 아닙니까."라는 말을 듣고, (어법에 안 맞는 '다나까'는 차치하고) 다른 사람은 모르길 바란 약한 부분을 들켜버린 것 같아 내심 흠칫했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고, 나쁜 것이 아님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개념이 있다. 내게는 그중 하나가 '내성적(內省的)'인 성격이었다. '내성적'의 사전적 뜻을 찾아보니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성적인 편에 속하는 내 성격이 싫었고, 감정의 결을 따져보면 창피한 쪽에 가까운 싫음이었다. 나는 단체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말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조금 창피했다. 모두가 왁자지껄한 가운데 혼자 가만히 있는 건 민망한 일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쉼 없이 활발하고,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유쾌한 아이들. 모두에게 인기를 독차지하는 친구들.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임원에 선출되는 친구들. 나는 그들이 신기했고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그 친구 주변에 유독 유쾌한 사람이 많은 덕분인가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고 교실에서 앉아있는 자리가 바뀌어도 장소 불문 금세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그들을 보며,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닌 '다름'의 개념이라는 것을 이제는 편하게 인정하지만, 어릴 때는 '활발함'과 '유쾌함'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가치라 여겼고, 여러 사람들 틈에서는 특히 낯을 가리며 평소보다 더 정적이 되는 내 성격이 스스로에게 긍정적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성적 성격은 초면인 사람들의 모임에서 정점을 찍었다. 모두가 초면이면 그나마 나은데, (물론 다들 빠르게 삼삼오오 친해지는 것에 비해 친구가 늦게 생기는 편이다.) 난이도 최상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아는 모임에 참석할 때, 혹은 이미 안면만 있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야 할 때(회식이나 워크숍, 야외행사 등) 등이었다. 행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는 그 부담감에 사로잡혀 항시 머릿속 한구석을 내주며 지냈다. 

 매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일이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중학교 때 아버지의 주재원 발령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1년간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외국인 거주 지역에서 지내며 국제학교를 다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있는 한국인들과 보냈다. 당시의 생활은 견문을 넓히고 시야를 키워준 긍정적 부분도 많았지만, 제한된 한국인들과 교류하던 일은 나와 맞는 친구를 찾지 못해 한동안 겉도는 일로 이어졌다. 친구가 없는 학교는 당연히 가기 싫었고, 학교에 빠지기 위해 아프려고 노력하기에 이르렀다. 밤을 새우고 해가 뜰 즈음에 잠이 들어 금방 아침을 맞이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안색도 안 좋아 심하게 아파 보인 덕분에 엄마를 속이고 학교를 빠질 수 있었다. 늘 가기 싫은 학교였지만 특히 가기 꺼려지는 몇몇 날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발표회나 학기 수료식처럼 재학생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자연스럽게 즐겨야 하는 행사가 있으면 친구도 없이 자연스러울 자신이 없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때 남은 상흔이었을까. 나는 언제나 낯선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되면 한번 '멈칫'하고 의식하는 습관이 배었다. 한때 무의식적으로 진입했던 낯선 세계가 두려운 존재가 되어, 어색함을 장착했고, 나의 대사를 고민하며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내가 버거웠다. 

 부끄러워하고 내심 미워하던 '내성적(內省的)' 성격에 관한 인식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아마도 글을 통함이었다. 누군가 '내성적'의 가치를 재발견해 쓴 글을 접하게 되었고, 진지하게 읽어보며 내성적 성격이 가진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차분하며, 빠르거나 눈에 띄게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자신의 시간에 맞춰 성장하고 움직이는 일.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일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며 나는 나의 내성적인 면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모두 같은 속도로 똑같이 행동할 필요는 없는 거니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거니깐. 각기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니고 태어났으니깐.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 되는 거니깐. 폭넓게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지는 못해도, 안으로 안으로 깊게 파고들며 그 시간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도 분명 있는 거니깐. 내성적인 성격으로 비로소 빚어낼 수 있는 장점이 분명 있는 거니깐. 낯선 사람들이 모인 곳이 어색해도, 나처럼 어색해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을 테니 조금 용기 내서 먼저 다가가면 되는 거니깐.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다가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울 때도 있지만, 쉽지 않을 때도 많다.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볼 때, 하물며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타인의 모습이 좋아 보일 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나는 이제 나의 모습을 받아들였지만, '내성적'인 개념을 좋아한 뒤 긍정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와 친해지려 노력하는 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나는 내성성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와 조금 더 가까워졌고 과거에서도 한 뼘 앞으로 나아갔다.

달콤한 토피 카라멜 크림라테를 마시며 쓴 이 글로 '내성적'인 개념이 한층 달콤하게 기억되기를. 

 덧. 발행하기에 앞서 망설여지는 글이 있는데 이 글도 그랬다. 망설임의 이유는 매번 다르지만 오늘은 '자신감 부족'이 원인이었다. 잠시 글을 멈추고, 선물 받은 책을 읽다가 용기를 내서 다시 이어서 쓰고 있다. 일부를 옮겨본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 경험을 한 후, 결국 '남이 평가해 주는 숫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스스로 숫자를 만들어내자는 결심이 섰다. 예컨대 '좋아요'나 구독자수, 댓글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새 글을 발행하면 생기는 '1'이라는 숫자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가 주도권을 쥔 숫자, 당시에는 그게 필요했다." - 태지원, 그림의 말들

 글이 아름답지 못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발행을 망설였지만 마음에 들어온 생각이므로 모른 채 하고 싶지 않았고, 용기를 내서 이렇게 발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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