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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15. 2023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

삶이 머물던 곳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

 공지영 작가는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지 묻는 딸에게 말한다.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고.

 읽던 당시에는 뜻은 알았지만 크게 공감이 되지 않고 마음에만 남았던 그 대목을 이제 이해한다.

공지영 작가는 알았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성숙한 태도를 유지하는 일의 어려움을. 그렇지만 그것의 중요성을. 어쩌면 작가는 잦은 이별을 통해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끝맺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이성 관계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 '좋은 이별'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삶에서 크고 작은 이별들을 경험하며 나는 느낀다. 나는 '잘 헤어지기'에 좀 글렀다는 것을. 잘 헤어지기에 나는 너무 미련이 많다. ‘헤어짐’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의 파장은 마음을 가차 없이 흔들다 못해 나를 뚫고 나와버려서, 한동안 먹먹함에 휩싸여있다가 간신히 헤어 나오며 나는 이별에 자주 겁을 먹는다.


 '이별'에 대해 부쩍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하루하루 '상실'을 떠올리는 시간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어느 시절의 상실을 비로소 실감한 나는, 그것을 조금씩 떠나보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코로나로 긴 시간 발이 묶였다가, 마침내 비자가 발급되어 급하게 일본으로 떠난 뒤 이별을 찬찬히 받아들일 새도 없이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삶의 변화에 따른 감정을 곱씹을 기회 없이 맞이한 새로운 삶으로, 오랜 시간 속해 있던 세계의 상실을 한동안 실감하지 못했다.

 다시 찾은 한국은 반가움이 컸지만, 곳곳에서 그리움이 자주 눈에 밟혔다. 그리움은 특별한 장소가 아닌 일상이 머물던 곳에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던 길,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매일같이 오가던 피트니스 센터와 달리던 집 앞 공원과 한동안 머물던 부모님 댁까지. 한때의 삶이 머물던 곳을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혀 자주 먹먹해지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삶에 많은 곁을 주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한때의 삶이 머물던 장소들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겪어내며, 모든 일이 그렇듯 이별에 있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마음의 영역임을 깨달았다. 주어진 이별에 순응하고, 그것에 마음을 맞춰가는 일.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상실감이 두려울지라도 피하지 않고 맞서는 일.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그토록 어려워 아마 누구에게나 이별은 힘겨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감상에 젖어 모든 것이 미화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누군가의 미운 모습에서도 기꺼이 예쁨을 찾아낼 수 있고, 매일 보던 풍경일지라도 좀 더 아름다워 보이고 익숙한 상황도 애틋해지고, 힘겨운 일도 조금은 견딜만하고, 이전보다 좀 더 깊게 자신의 곁을 내주게 되므로.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가치가 지닌 너그러움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마침내는 그것을 토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 그것이 잘 헤어지는 것의 모든 것이 아닐까.

 중요하지만 유예했던 일. 한때의 삶이 머물던 이 시간 속의 나와 부디 아름답게 헤어지고 싶다. 그 힘으로 새롭게 다가올 시간들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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