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Aug 17. 2023

마음이 고귀한 사람

 조금 마음을 기울이면 볼 수 있는 당신의 아름다움

 예의에 어긋난 일이나, 정도를 벗어난 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로 인해 호감 있는 상대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좋지 않게 엮이는 일을 가급적 피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에 따라 책정되는 상대에 대한 기대치이다. 보상 심리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당신에게 이만큼의 예의를 다했으니, 당신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기대해도 되겠지요? 싶은 마음이다.(이렇게 쓰는 것은 나의 속마음을 포장 없이 내보이는 느낌이라 부담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직설적으로 쓰고 싶었다.)

 그렇지 못한 경우 상대에 대한 판단을 비교적 빠르게 내리는 편이고, 한번 내린 판단에 오랫동안 기대는 경향이 있다. 지켜본 바 누군가의 부족한 점이나 나와 맞지 않는 점을 근거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 주관적으로 결론지은 후 그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대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관계는 결코 평면적이 아니며 가변적이고 입체적이고, 사람은 여러 가지 면모를 지니고 있기에 그 후 (혼자) 부끄러워짐을 몇 차례 경험했다.

 내심 평가절하하던 누군가의 모습과 나 또한 별다를 것 없음을 알아버렸을 때, 나의 닫힌 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진심을 보여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 사람의 장점을 보았을 때 나는 성급하게 결론짓고, 행동하고 말했던 스스로가 종종 부끄럽고 민망했다. 가장 민망한 일은 상대가 사실 나보다 많이 훌륭한 인격을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경우였다. 물론 오만한 태도로 그것을 좀처럼 수긍하려고 들지 않았고, '그랬구나'라고 상대의 진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때 비로소 생각을 바꿨다.

 임은 내 방에 자주 놀러 왔다.(중략) 임은 낡은 기숙사 벽에 기대앉아 내 뒷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얘길 꺼냈다. (중략) 나는 "그랬구나." 하고 잠자코 들었다. 몇 가지 조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 임은 더듬거리며 고맙다고 말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분명 친절했지만 그 친절은 관대한 상사 같은 친절이었다. 권위를 쥔 친절이자 상대를 내려다보는 친절 말이다.-이슬아, 심신단련

 학창 시절을 대안학교에서 보낸 이슬아 작가는 그곳에서 만난 어떤 종류의 발달장애를 앓고 있던 친구 '임'과의 일에 관해 위와 같이 썼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알았다. 나 역시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했음을. 나는 사실 알고 있다. 내 기준에 의해 판단 내린 누군가를 대한 나의 모습이 미성숙했던 과거의 모습이 아닌, 나름의 교양을 쌓은 뒤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현재 진행형의 인격임을.

 입대 후 소대장의 보직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 나는 엄격한 훈육장교님들의 쉼 없는 가르침으로 fm만 허용되어야 할 정답이라 여기던 상태였다. 그 시각으로 소대원들의 미숙한 모습을 많이 보았고, 정확히는 찾아냈고, 그 기준에 의해 누군가를 훈계한 뒤 마음으로 '저 아이는 이러이러하다'라고 판단 내린 적이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아이와 함께 야간 당직 근무에 편성된 나는 미처 보지 못한 그 아이의 장점을 많이 발견하며 미안하고 민망했던 기억이 있고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라 그 아이와의 인연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전역 후에도 종종 전화로 안부를 전하던 그 아이를 통해, 사람을 입체적으로 살피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 뒤로 극적으로 인격이 개선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나는 여전했다.  

 이 시간 '마음이 고귀한 사람'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나의 여전함에서 기인했다. 나는 여전히 좁은 시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마치 관대한 상사 같은 얕은 친절로 간신히 예의를 지키다가 상대의 고귀한 인격에 부끄러워지고 미안함을 반복하며 반성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반성하는 자체에 희망이 있다고 여기리라 애써 아름답게 포장하고 글을 끝맺기에 염치가 없을 정도로 나의 근시안적 시야와 좁은 마음은 갈길이 멀다. 많이 멀다.  

 이슬아 작가는 10년이 지난 훗날 그 시절을 기록하며 말한다. 당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은 누구도 아닌 본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고.  

 조금만 상대를 깊고 너그러운 시야를 갖고 바라보자고 생각해 본다. 마음을 기울여 상대의 아름다움을 보자고 생각해 본다. 다른 누구보다 훗날의 나를 위해서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