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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21. 2023

(그럼에도) 두렵지 않은 시간들

내가 가진 패가 초라해 보일 때

 초라한 내 모습이 미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있었습니다.
-태지원,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다른 사람이 되는 삶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가 가진 패가 다른 사람들 보다 부족해 보일 때, 다른 사람의 삶이 좋아 보일 때, 나의 삶이 지루하거나 초라하다 느껴질 때 다른 삶을 사는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때로는 가상의 인물의 삶을, 때로는 실존하는 누군가의 삶을, 때로는 원하는 모습이 된 나의 삶을.

 그럴 때면 복잡한 마음에 잠을 이루기 힘든 밤이 있다. 삶의 끝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졌으리라 여겨지는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싶은 마음에 허우적거리며, 좁은 경험치로 답을 찾지 못해 스스로 만든 가상의 막연한 세계를 헤매는 날이 이어질 때가 있다.

 한참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헤매는 날이 이어지다 문득 알았다. '관성(慣性)', 내게는 관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긴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관성을 한번 크게 겪어본 내게 관성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자 며칠을 헤매던 날 가운데 위로가 몰려왔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헤매다가도 나를 사랑하는 삶으로 결국 돌아오는 관성. 힘들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간에 아파해도 끝내 마음의 중심을 잡은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관성. 내가 가진 것과 다른 것을 가진 타인의 삶을 살피다가, 그럼에도 스스로를 믿고 나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관성. 내게 주어진 것이 나에게 맞는 최고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관성. 그 관성에 의해 많이 흔들려도 결국 다시 중심을 잡는 삶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고, 글이 쓰고 싶었다.

 글감에 대해 곰곰이 고민할 때가 있는 반면, 글감이 갑자기 생각나 글이 무척 쓰고 싶어 질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후자였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고 그 사실을 잊기 전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했다. 얼마 전 '내가 가진 패가 초라해 보일 때.'에 관한 글을 쓰려다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찾지 못해 아직 쓰지 못한 글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상황은 다르지만 하루키는 알고 있었다. 타인의 삶이 아닌 스스로의 삶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현명한 정답에 관해. 무슨 일에든 정답이 있다고 확언하지 못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는 확신한다.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삶의 현명한 정답이라는 사실을.

  그 정해진 정답을 알지만 다시 잊고, 또다시 긴 시간을 헤매고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진 뒤 다시 깨달음을 얻는 일을 반복할 만큼 현명함과 내공은 부족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나는 결국에는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에 조금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 비록 용기를 냈지만 나는 안다. 다시 흔들리고 좌절하고 괴로운 시간이 찾아올 수 있음을. 어쩌면 빠른 시간 내에 다시 그럴 수 있음을. 그럼에도 또다시 이겨내는 날들이 쌓여 나에게 삶을 버티고 끌어나갈 근력을 만들어 줄 것을 믿어보기로 한다.

 내일은 부디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현명해져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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