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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22. 2023

나의 '고다와리(こだわり, 구애됨)' 안경

수건을 접으며

 군인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여군사관 출신인 나는 대학교를 졸업 한 뒤 16주의 군사 훈련을 받고 임관했다. 출신에 관해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사관학교처럼 대학교 시절 내내 군사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16주의 시간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어떤 시간의 농도는 객관적 양이 아니라 그 강렬함으로 결정됨이 분명하다. 16주의 시간은 인생 전반에 있어 찰나에 가깝지만, 그 농도가 짙어 몇몇의 행위들은 그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것들이 있다.


 후보생 시절 매일 아침저녁으로 점호(點呼)를 받았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인원이 맞는가를 알아보는 점호의 사전적 의미에서 확장되어 점호시간에 인원 확인은 물론 개인 위생과 숙소 정리상태, 물품 정리 상태 등을 점검받았는데 그중 '정리'에 관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초반에 받았던 지적사항 중 하나는 모포 정리 상태였다. 분명히 정리를 완료했음에도 주의를 받아 같은 방 동기들과 자세히 들여다본 끝에 미흡사항을 알게 되었다. 모포를 접을 때 모포의 끝 부분을 눈에 띄지 않게 모두 안으로 집어넣고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불로 접어보았다.

왼쪽 처럼  끝 모서리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게 정리해야 했다.

 수건도 동일했다. 관물대에 쌓아둔 수건이 바깥에서 볼 때 접힌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깔끔한 형태로 유지되어야 했다. 그 기억은 내게 강렬함을 남겼는지 그 후로도 무언가를 접을 때, 접은 부분이 보이지 않게 접어야 깔끔해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불을 정리하는 일은 곧 잊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접고 있으나, 수건 접기는 어느덧 의식이 개입되는 행위가 되고, 바뀐 의식이 무의식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항상 왼쪽 처럼 접힌 부분이 보이지 않게 넣는다. 수건 접는 모양,각도까지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애초에 계획적 이거나 체계적인 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다. 언제나 가장 효율을 우선시해 관심밖의 일들은 뭐든 (대충) 잽싸게 해치워 버리고 나의 시간을 갖는 것을 선호하는데, 의도치 않게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이 하나 생겨버렸다. 귀찮지만 뒤집힌 수건을 보면 슬그머니 거슬려서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지내는 수밖에. 이때의 피곤함은 부정적 의미의 피곤함이 아닌 객관적인 피곤함 그 자체다.

 그런가 하면 어떠한 상황에 놓였을 때 매번 의식하게 되는 행위도 하나 생겼다. 음식 그릇을 치우러 가는 길에 음식물을 씹는 일이 그것이다. 후보생 시절 식사시간에는 식판에 밥을 먹었고 먹은 후에는 각각 본인의 식판을 정리하고 세척해야 했다. 아마 무의식이었을 것이라 예상되나, 그때 음식을 입에 넣고 다 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마지막으로 입에 음식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음식을 씹으며 식판을 옮기는 일에 유독 엄격한 훈육 장교님이 한분 계셨다. 그 행위에 관해 누군가에게 불호령이 떨어지는 장면을 몇 차례 목격하며,  자리에 앉아 음식을 다 먹고 삼킨 뒤 먹은 그릇을 옮기는 행위가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푸드코트나 셀프로 서빙하도록 운영되는 식당에 가면 식사를 마친 뒤 그릇을 들고일어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나 장단점을 따질 생각은 없다. 문제는 무의식의 영역이었고,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그 행위자체가 그 순간이 오면 매번 나의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의식의 행위로 넘어와 버렸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집에서는 그것에 대해 완전히! 잊는다. 밥을 먹고 정리하는 모든 것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무의식의 영역이나, 유독 외부에서 어김없이 그 생각은 의식의 영역에서 머리를 내민다. 의식적으로 억제할 일은 아니니 별 수 없다. 이 또한 이렇게 지내는 수밖에.

 군 생활을 겪은 뒤 나는 아무래도 특정 의식이 담긴 안경이 하나 생긴 것 같다. 어떤 상황들을 만나면 내가 '군 생활의 의식이 담긴 안경을 쓰고 봐야지'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나의 무의식이 그 안경을 빼들어 쓰고 특정 상황을 바라볼 때가 있다. 직접적으로 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예능 책 등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어떠한 환경이나 직업도 군 시절을 겪은 뒤 군의 안경을 쓰고 볼 때가 있다. 책을 통해 수용소 생활을 읽을 때 그곳의 엄격함과 규칙성(군 생활이 결코 수용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보생 시절의 엄격한 규율과 통제된 생활은 일정 부분 그때를 연상시킨다.)에 관한 부분을 볼 때, 아침 달리기 길에 인근 고등학교를 지나는데 그곳에서 체육 시간에 규칙적으로 큰 소리로 들려오는 구령을 들을 때, 제각각인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순간순간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만날 때 군생활을 지난 뒤 생긴 안경을 통해 그것을 바라볼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글을 쓰다 보니 신랑이 가진 안경도 하나 떠올랐다. 잠시 그가 공부하던 시절 그는 연필부터 구입했다. 군 생활 문서를 기안할 때 첫 지휘관의 영향으로 연필로 문서를 기안하는 것에 익숙해진 그는 공부하며 무언가를 집중해서 써야 할 필요를 느끼자 무의식적으로 연필부터 찾았던 것이다.  

 그러한 얽매임들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고 나쁨의 영역은 아니다. 한때는 그것을 부정하고 벗어나야지 생각했던 시간도 있지만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독특함중 하나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그것이 나만의 안경 아닐까. 나의 고유한 '고다와리(こだわり, 拘り·拘泥り 구애됨, 구애되는 마음)' 안경. 나만이 가진 '고다와리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일. 바꿀 수 없는 이상 그 시각에 담긴 나의 글을 써야겠다.

덧. 고다와리(こだわり, 拘り·拘泥り)는 일본어로 구애됨, 구애되는 마음을 뜻한다. 잘 와닿지 않아 다시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구애된다는 것은 거리끼거나 얽매임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다와리' 안경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다.    


 읽기와 쓰기와 생각하기는 완전히 다른 영역임이 확실하다. 글로 읽는다면 술술 읽힐 위의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아이를 재우기 위해 같이 누워 생각으로 유려하게 써 내렸다. 빨리 눈에 보이는 글로 옮기고 싶어 아이가 속히 잠들기를 바랐는데, 실제로 써보니 굉장히 속도가 더디고 말문이 막히듯 글문이 자주 막혔다. 심지어 앞뒤도 안 맞아 여러 번 손보는 중이다.

 얼마의 시간을 더 보내야 생각의 속도를 손이 따라가기 바쁠 정도로 유려한 글을 쓰게 될까. 유창하게 머릿속의 생각들을 글로 구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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