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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06. 2023

집요함에 관하여

그것은 아름다운가

 어떤 가치들은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던 잣대로 주관적으로 보곤 한다. 그중 하나는 '집요함'이다. 나는 부정에 가까운 감정으로 '집요함'을 바라봤다. '집요함'자체를 좋아하지 않는지 '집요한 사람'이 부담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타인의 끈질김이 포착되면 그것을 '집요함'으로 분류하고 '질리는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평가 절하했다.

 '집요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글을 쓰며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또 파고들어 정확히 알고 기어이 끝을 보며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끈기 있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요함'은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끈기는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 비슷한 뜻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끈기'라는 개념이 더 긍정적으로 느껴지니 '끈기'를 혼용해 써 보겠다.


 나는 대체로 자주 끈기가 부족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 (사실을 알기는 겁나지만) 아마 지금도 상당히 끈기가 부족할 것 같다. 이것을 기필코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 기어이 끝을 보겠다는 집요함. 나는 그것이 부족해 뒷심이 자주 달렸고,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아니면 말지 뭐.''어쩔 수 없지 뭐.'라고 금방 단념하며 머릿속으로 자주 다른 길을 찾았다. 삶에서 기어이 이루고 싶은 간절한 어떤 것이 없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움'에 관한 개인적 생각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강인함'까지는 긍정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집요함'에 자칫 따라붙기 쉬운 '독함(마음이나 성격 따위가 모질다.)'이나 '악착같음(매우 모질고 끈덕지다.)' 같은 개념에서 아름다움을 연상하기는 어려웠으므로 집요함을 꺼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집요하려면 몸이 힘들고 피곤할 테니, 지레 사양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나의  '뒷심부족'은 글을 쓰면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다른 누군가의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나는 조금 확신하다. 글에서는 그 사람이 읽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나의 부족한 끈기와 뒷심 부족은 나의 글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끝부분에 가서 무언가 부족하게 마무리되거나 퇴고가 덜 된 듯한 글들은 읽는 이들에게도 읽혔을 듯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알았다. 어찌 됐던 글을 마무리 짓고 발행을 하고 다시 읽어보면 부족했던 뒷심이 도무지 숨겨지지를 않았다.

 가끔 '발행' 그 자체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 '발행'을 위해 부족하고 성에 차지 않음이 느껴져도 종종 기어이 발행을 했다. '퇴고'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아직 문맥의 전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더 정교하게 다듬고 문장을 손봐야 할 것 같은데 이후의 나의 스케줄을 따져보며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지금이 아니면 늦은 밤이나 다음날 발행이 가능할 것 같아서, 늦은 밤에 쓰면 감정에 과하게 사로 잡힐까 봐 싫어서, 그렇다고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속히 '발행'이 하고 싶어서 때때로 나는 마음에 차지 않는 글을 발행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써본다면 '몰라. 이 정도면 괜찮지 뭐. 됐어 됐어.' 정도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써진 글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에 있었다. 그 글로 인해 아쉽거나 민망한 부류의 감정, 즉 덜 당당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글에 남겨진 특정한 누군가의 라이킷을 볼 때 나는 때때로 민망했다. 글을 읽는 분들 중 구체성을 띈 분들이 몇몇 있는데, 특정글에 따른 특정 사람의 흔적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엇! 그 글을? 그건 평소보다 마무리가 약했던 것 같은데. 좀 더 잘 써진 글을 봤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마음. 물론 민망한 마음을 야기시키는 그 누군가에게 글 잘 쓰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나는 가끔 집요함이 부족했던 글에 대해 민망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었다.    

 쉽게 써지거나 머릿속에서 문장이 흘러나오는 글이 간혹 있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며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에너지도 상당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시간 쓰다 보면 머리 회전이 느려져 글을 짜내기도 힘들고, 몸도 피곤하고 앉아있기도 힘들어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만큼 쓴 글을 관둘 수 없으니, 결국 성급한 '발행'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곰곰이 분석해 보니 클라이맥스와 결말의 사건 구도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비중 있는 조연 캐릭터 몇이 흐지부지 막에서 퇴장하거나, 관계가 잘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특히 중요한 조연인 백남선 캐릭터가 에필로그에 잠시 등장하며 마무리되고 있었는데, 출판사 측에서는 그가 좀 더 활약해 주길 원했다. 가만히 따져보니 작가가 원고 작업 막바지에 지친 나머지 백남선 캐릭터를 끝까지 몰아붙이지 못한 듯했다.’ -김호연, 김호연의 작업실

 김호연 작가님을 확연히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서였다. 그분의 다른 저서 '김호연의 작업실'을 읽으며 나는 위의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물론 그분의 작업량에 비할 바 못되나 끝까지 기어이 캐릭터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힘은 바로 '집요함'에서 기인함이 아니었을까. 어떠한 '집요함'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집요함'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되는 '아름다움'도 있다.

 김호연 작가님의 글을 쓰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작업실을 얻어 쉼 없이 글을 썼던 그분의 끈기를. 청탁받은 것도 아니고 출판 여부도 불확실했으며 원하는 곳도 없는 글을 끝내 완성해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아름다운 소설을 기어이 써낸 그분의 집요함과 끈기를.

 아름다움을 낳을 수 있는 '집요함'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매사 집요할 필요는 없고, 그럴 의욕도 체력도 없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끝내 '집요함'을 놓지 말자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발행을 앞두고 있다. 오늘의 집요함의 결과가 부디 아름다움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글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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