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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04. 2023

내가 그리고 싶은 세계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지금보다)'글'의 세계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을 때, 막연하게 '작가'하면 떠올렸던 직군의 이미지는 천재적인 글 솜씨를 구가하는 이들었다. 헤밍웨이, 셰익스피어, 햄릿 등 세계적인 거장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박완서, 박경리, 김훈 등 전 국민이 다 아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분들. 이렇게 구분 짓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으나, 소위 '정통 문학'이라 불리는 분야의 글을 쓰는 이들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로서 그들이 쓰는 글을 떠올려 보면, 나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은 지극히 멀고도 아득하고 까마득해 읽는 일 외에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세계의 일이었다. 자기 계발서로 분류되는 서적을 꽤 좋아했고, 에세이를 즐겨 읽었으면서도, 관념과 구획으로 나누어진 세계에 익숙했던 나는 그것이 글의 세계의 전부라 여겼다.

 나의 글의 세계의 개념이 한 층 확장된 계기는 책의 한 구절을 통해서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글을 '문장'과 '문장 이외의 것'으로 구분한다. (중략)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빈말로라도 문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신 캐릭터 구성과 줄거리의 반전, 창작해 낸 사건을 실제 역사에 교묘하게 끼워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정명섭, 계약서를 써야 작가가 되지

 15년 동안 약 100권의 책을 쓴 정명섭 저자의 책을 읽으며 위의 구절에서 마주한 감정은 한편으로는 '충격'쪽으로 분류될 만한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아니, 만났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그 세계의 산물들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닫힌 세계관으로 인. 지. 하지 못했던 세계의 존재를 비로소 인지했다. 그 일은 어쩌면 내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다. 소위 신이 내린 재능이 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있지 않아도, 전율할 만큼의 필력이 없어도, 본인만의 무기로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물론 쉼 없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내게 희망이었고, 해방이었다.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 세계를 사랑했음에도, 그토록 오래 머물던 세계의 시야가 그제야 한 뼘 넓어진 것이었다.

 숨은 그림 찾기를 예를 들면, 찾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숨겨진 곳을 알고 난 후에는 계속 보이듯, 글의 세계를 구성하는 틀에 관한 시야가 넓어지자 세상에는 많고도 다양한 종류의 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모든 사람의 다름과 각기 고유한 재능이 있음을 알고 인정하면서, 왜 나는 '글'의 세계에서 갖는 재능은 유려한 문장으로 분류되는 그 하나일 뿐이라 여겼을까.   

  '나는 유려한 문장력이나 뛰어난 표현력을 갖춘 사람은 아니다. 문학적 상상력도 부족하다. 만약 내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일로 글쓰기에 도전했다면 한 달 만에 재능의 부재를 인정하며 손을 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를 담은 글쓰기나 책 쓰기에 필요한 몇 가지 재능이 내 안에 존재함을 발견했다.' -태지원, 그림의 말들

  유랑선생 태지원 작가님 또한 '지식의 부스러기를 모아 글로 엮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시며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분야를 구축해 가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문장에서 드러나는 그분의 자기 객관화의 관한 언급은 어떠한 좌절감뒤에 얻은 것이 아닌 담백하고 객관적인 '객관화'그 자체일 뿐이었다.  


 글의 세계의 다양성에 관한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고 해서, 그 속의 '나'의 고유성이 저절로 발견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쓰는 일상을 보내며 나의 고유성에 관한 윤곽이 전보다는 확연히 드러났지만, 아직은 막연해 좀 더 그 속을 파고들고 파고들어, 세세하게 낱낱이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구체적으로 드러난 고유성의 윤곽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나를 설레게 만들며,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글의 성향은 알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면 종종 내게 전율을 일게 하는 문장을 만난다.

'착한 딸,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의 도덕에 결박당해 시들어 간 청춘, 스스로 부과한 도덕적 책무를 이고 지고 사느라 삶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 낙타 같은 날들이 스쳤다.'-은유, 쓰기의 말들

'견고한 질서 완고한 관습 치밀한 통제를 깨뜨리고 균열을 내는 것, 글쓰기란 그런 것이므로 우리는 종종 뚝뚝 떨어지는 서로의 피를 지혈하고 깊게 베인 상처를 싸매주고 뜯겨나간 옷자락을 수선해 주었다'-어딘, 활활 발발

'나무가 나무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햇빛과 비와 흙과 벌과 나비와 벌레와 불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하여 나무가 그 이름이 나무일뿐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이고 깃들여 이루어진 하나의 우주라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읽을 만한 글을 쓸 손이 준비되는 거야.'-어딘, 활활 발발

 책을 읽다 어느 순간 사로잡혀 전율을 느끼고, 가슴속에 흔적을 남긴 문장들을 떠올려 본다. 내가 쓸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세계의 글이라도, 그 세계에 거하고 있는 감각의 생생함을 다시 느껴본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소망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며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세계에 가닿기를, 조금이라도 그곳을 엿보고 생각속에 존재하는 우주를 펼쳐낼 수 있기를 오늘도 쉼 없이 갈망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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