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Aug 03. 2022

군 근무 평정

이것은 자기 PR인 것일까

 연 1회였을 것이다. 군 생활중에는 근무평정을 작성하는 시기가 있었다. 근무평정은 맡았던 보직에 대한 상급자의 평가로써 일종의 근무 성적이고 차후 장기복무, 진급, 보직 등에 영향을 미치는 제법 중요한 것이다. 학창 시절로 본다면 '생활지도부'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무평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평가 대상자가 군생활에서 어떠한 보직을 맡았으며 업무에 임하는 태도 및 업무 수행능력은 어떠했는지 등 업무에 관한 평가가 있고, 평가 대상자의 성격의 장단점 및 동료들과의 관계 등의 개인에 관한 부분, 그리고 자기 계발에 대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등 미래의 발전 가능성까지 종합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것을 압축해서 작성해야 하니 분량만 놓고 보면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가볍게 볼 것은 아니었다.
 근무평정은 1차 상급자가 작성하는 것이니 내가 소대장 시절에는 중대장님이, 운영 장교 시절에는 운영과장님이 나의 근무평정을 작성하셨고, 나는 나의 부소대장의 근무 평정을 작성했다. 한 지휘관이 담당하는 간부의 수가 10명 전후로 상당하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근무 평정을 일일이 작성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므로, 보통은 평정을 받는 하급자가 본인의 업적과 스스로에 대해 기술한 평정 초안을 상급자에게 전달하면 상급자가 수정 및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제출하는 것이 관례였다. 단기 복무자가 아닌 이상 모두 장기나 진급을 희망하기에 근무 평정은 중요했고, 본인에 대한 업적 및 장점 등은 아무래도 스스로가 가장 잘 쓸 수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상급자는 부서 및 중대 간부에 대한 애정이 있고 그들의 장기복무 및 진급을 바라므로 하급자들의 작성한 근무평정의 내용을 상당부분 존중해 주곤 했다.
 나는 이 근무평정이 부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싫었다. 당면한 과제들만 해도 바쁜데 근무 평정까지 적어야 한다니 짜증이 났다. 나를 포장한다고 생각하니 민망했고, 도저히 나의 업적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매일같이 쉼 없이 일을 했음에도 사고의 부족인지 기록의 부족인지 내가 지난 1년간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군을 떠난 나의 마음도 한몫 거들었다. 당시 군생활에 대한 의지도 애정도 없었기에, 나에 대한 근무 평정에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쓰신다 해도 상관없으니 나의 초안을 굳이 참고하시지 말고 알아서 써 주셔도 정말로 괜찮다고 차마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상급자께 새로운 일거리를 추가해 드릴 필요는 없으니 별 수 없이 동료들의 것과 선임들의 것을 적당히 참고해서 마지못해 작성해서 제출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근무 평정의 시기가 돌아왔다. 아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쓴다고 해도 글에는 쓰는 이의 마음이 담길 수밖에 없는 . 마지막 근무 평정을 작성하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쓸쓸한 사실을. 당시 보직이 운영 장교였기에 근무지인 지휘통제실에서 늦은  컴퓨터를 두들기며 작아졌던  마음이 기억난다. 나의 업적에 대한 것도 나의 성격에 대한 것도 내가쓰는글이 당시  눈에 비친  모습과 달라 마치 내가 아닌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느껴지며 나는 자꾸만 쓸쓸했다. 그리고  마음을 특별히 치유받지 못한  전역을 맞이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의 시간이 흘렀다. 정작 반전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전역 후에도 내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이 진정한 반전이었다. 설령 그 당시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해도 그때 그 모습이 나의 끝이 아니라는 것.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삶을 살아가고, 원한다면 나는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다. 내 삶을 기대감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군인으로서의 나의 삶이 반전 없이, 특출 난 부분 없이 어쩌면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한들 그 삶은 그 자체로 흘러 보내주면 될 것이다. 그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디고 앞날을 기약할 수 있게 만든 것만으로도 지난 시간의 나는 역할을 다한 것이다. 나에게는 군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이 이어지고 있고 그것을 오직 나만의 빛깔로 아름답게 채워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반전이고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해 질 녘의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먹먹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군 여군무원 간담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