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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17. 2022

지상군 페스티벌 안내장교 파견

파견업무가 주는 배움과 즐거움

 대위 진급을 한 달 앞둔 2011년 10월. 연 1회 육군본부에서 개최되는 '지상군 페스티벌'에 안내장교로 파견되었다. 전년도에도 제안이 있었으나 부대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다행히 그 해에는 참석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업무를 한다는 자체로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지상군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장소는 대전에 있는 육군본부. 육군 본부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고, 좀처럼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니 개인적으로도 좋은 기회였다. 

 지상군 페스티벌은 대한민국 육군의 문화 축제로써 군인과 일반인들 모두 참석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육군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여 강하고 이로운 육군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그 취지로써, 세부적으로는 육군 역사관, 최신예 무기 전시, 한미연합군 전력 장비 전시, 특전사의 레펠 시범, 시가지 전투 재연, 장갑차·헬기 등의 탑승 체험, 전투기 시뮬레이터 조종, 군복 입어보기·병영식 먹어보기 등의 병영 훈련 체험, 드론 경연대회, 군견 중심의 애견쇼, 군마 체험, 포토제닉, 군악대 공연, 의장대 시범, 특공무술 시범, 뮤지컬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홈페이지를 검색하여 발췌) 큰 행사장 안팎으로 군 관련 각종 부스가 마련되어 있는데 병기병과 소속인 나는 탄약과 선배님들과 부스 하나를 맡아서 탄약 및 무기 분야의 장비를 전시하고 설명해주는 임무를 위해 파견되었다. 탄약과 파견 안내장교는 아마 탄약 사령부 예하 중위급 여군 병기장교들을 대상으로 순번제로 파견되는듯하고 진급을 앞두고 있던 나는 그해가 마지막으로 참석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파견기간은 총 2주로 행사 준비에 1주, 행사 진행에 1주가 각각 소요되고 중간에 낀 주말에는 따로 출근하지 않고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받았다. 육군본부는 군생활 4년 차에 갓 접어든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내가 당시 근무하던 부대는 중령 지휘관 휘하의 부대였기에, 영관급 장교도(소령, 중령, 대령) 2-3명 남짓일 뿐이었는데 육군 본부는 그야말로 별들의 천국이었다. 육군의 최고 기관인 만큼 고위 직급자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쉼 없이 장군들을 마주했다. 과장이 아니고 중위였던 나는 복도를 다닐 때면 끝없이 경례를 하며 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여담이지만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한 선배님께서는 장군들께만 경례하고 영관급 장교에게는 목례로 대처한다고 했는데 결코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2주간 파견된 부서는 '탄약과'로 나와 1년 여군 후배 한 명이 같이 파견되었는데 모두 같은 병과였기에 우리는 금방 선배님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같은 부대가 아니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관계이기에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육본 탄약과에서 평소 하는 일은 따로 있고 지상군 페스티벌은 단기 프로젝트였기에 큰 계획만 있었고 준비된 사항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발로 뛰며 전시를 준비하고 계획을 실현하는 일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파견된 나와 후배의 몫이었다.   

 연간 1회 있는 육군의 큰 행사이니만큼 전시 준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창고에 있던 오래된 모형들(탱크모형, 다련장 로켓 모형, 탄약 모형 등)을 전시하기 적당하도록 도색하고 손보고, 해당 모형에 대한 안내판도 제작하고, 문의하시는 분들께 설명해드릴 강의안을 지속적으로 암기하고, 준비가 잘 돼가고 있는지 점검받고, 필요한 장비를 때로는 멀리 가서 구해오는 등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육본에 파견된 2주 동안 숙소는 육본 내 콘도 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처음 이용해본 군 숙소는 시설이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좋은 인상을 받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바쁘게 행사 준비를 무사히 마치고, 주말을 보낸 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 안내장교의 복장은 정복으로 임관식 이후 계속 옷장에만 있던 정복을 마침내 입게 되었다. 정복에 제공되는 구두는 굽이 낮은 단화와 하이힐 두 가지 종류였는데, 단화보다는 하이힐을 신는 것이 좀 더 예쁘기에 나와 후배는 하이힐을 신기로 했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했지만 우리는 하이힐을 포기할 수 없었다. 09:00-17:00까지 방문객들(민간인, 군인)이 다녀갈 수 있는데, 우리 부스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전시물을 보여드리고 사전에 숙지한 내용들을 설명해 주었다. 정복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함께 기념촬영을 요청하시는 분들도 제법 있었다. 방문객이 계속 이어지기에 점심시간은 따로 없었고, 교대로 식사하며 부스를 지켜야 했고 휴식이라고 해봐야 방문객이 없을 때 잠깐 부스 내 숨겨둔 의자에 앉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리는 무척 아팠고 저녁에는 녹초가 되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서 즐거웠고, 방문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견문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육군 전체의 행사이기 때문에 타 부대에 근무하는 동기들이나 같은 교육기관에 있었던 분들 등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큰 행사였고, 민간인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였기에 나의 가족들도 한차례 다녀갔다. 부모님과 함께 오셨던 외할머니는 군 정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시며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자랑스럽다며 뿌듯해하셨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 보니 2주간의 파견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마치고 나니 이틀간의 휴가가 선물로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을 끝으로 행사를 모두 마치고 부스를 정리하고 나니 모든 것을 잘 끝마쳤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들었다. 함께 근무했던 분들과 인사를 마치고 바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뒤 다시 자대로 복귀할 생각을 하니 잠시 갑갑해졌지만, 일단 그 순간은 주어진 여유만을 기쁘게 누리기로 했다. 


 덧. 지상군 페스티벌 덕분에 나는 임관식 이후로 줄곧 옷장에만 있던 정복을 전역 전에 한차례 입어볼 수 있었다. 후보생 시절 사이즈를 직접 재서 개인별로 맞춤 제작된 군 정복은 꽤나 예쁜데, 야전에서는 입을 기회가 좀처럼 없어 실용성이 떨어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동기들을 보면 결혼할 때 웨딩 촬영 시 정복 컷을 넣기도 하는데 나는 전역 후 결혼을 해서 그 마저도 입어보지 못했다. 



모처럼 혼자 외출이 가능해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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