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모든 시간들에 힘입어,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기를
일본 유치원에서의 2년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
마침내 유치원 졸업식 날이 되었다. 대상자로써 '졸업식'은 이전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관문의 의미였는데, 보호자로서 졸업식을 겪는 마음은 달랐다. 졸업식을 앞둔 얼마 전부터 기분이 조금 이상했는데, 예상대로 그것은 눈물을 품고 있는 감정이었다. 개인적 감정에 의한 해석이었을까. 겪어본 일본의 졸업식은 '새 출발을 위한 나아감'보다는 '작별'의 의미가 강했다.
예정된 시간에 맞춰 가족들과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도착하니 대부분 일찍이 준비된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 정시에 참석한 우리는 행사장 뒤쪽에 서서 졸업식에 참석했다. 곧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고요한 음악과 함께 졸업하는 원아들이 입장했고, 음악의 영향인지 행사장은 이미 고요한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감사 인사를 시작으로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원아들 한 명 한 명 이름이 불리고 단상에 올라가 수료증을 받고 있는데 학부모석에서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하나 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동안 여러 차례 졸업식 리허설에 임했을 아이들의 절도 있는 동작도 인상 깊었다.
다음으로 졸업생들의 소감 발표 시간이 이어졌다. 졸업하는 45명의 원아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유치원 생활의 추억을 회상하는 그 시간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하고 잔잔한 배경음악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보호자는 물론 함께 울고 계신 선생님들을 보니, 빠르면 20개월부터 입학이 가능한 이 유치원에서 4년의 긴 시간을 보내고 훌쩍 자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아이를 보는 마음이 어떨지 어렴풋하게 짐작이 되었고 슬픈 분위기가 서로에게 이어져 곳곳에서 들리던 훌쩍임은 멈출 줄 몰랐다.
졸업생들의 작별 노래를 끝으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졸업식이 끝났다. 입장할 때처럼 고요한 음악과 함께 퇴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고결했고, 아이들이 떠난 장내에는 슬픈 여운이 짙었다. 나 또한 슬펐지만 '졸업식'을 행사 자체로 받아들이는 남편 덕분에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어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지만, 함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던 일본인 친구와 축하 인사를 주고받던 순간 보았다. 그의 눈에도 나와 같은 종류의 감정이 담겨 있음을. 순간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와 행사가 끝난 뒤 퇴장을 준비하던 어수선한 강당에서 혼자 우는 민망함이 벌어졌다. 이제 이 시절의 아이와의 헤어짐이라는 생각, 타국에서 잘 적응하고 자란 아이를 보는 대견함, 함께 걸었던 등원길 하원길의 풍경들, 같이 동네를 누비던 시간들. 이 시절의 아이와의 아름다운 모든 추억들이 몰려와 행사장에서 애써 외면했던 감정에 결국 사로잡혀버렸다.
애써 진정하고 다음 일정을 진행했다. 기념촬영을 마친 뒤에는 졸업파티 겸 사은회가 계획되어 있었다. 개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참석하는 자리라 합리적인 일본 답게 참석 여부는 자율이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고, 일본의 사은회 모습도 궁금해 참석 신청했는데 잘 한 결정이었다. 일본의 사은회 모습을 경험하는 문화적 이유는 차지하더라도, 아이의 졸업식을 겪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짙었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 답게 사은회도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리가 지정되어 네임택이 붙어 있었고, 입구에는 좌석의 전체 도안이 붙여져 좌석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점심으로 주문한 도시락은 예쁘고 고급스러웠으며 선생님과의 시간이 의미 있도록 프로그램은 체계적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디테일에 감탄하고 있는데, 행사 준비를 한 시간 도왔을 뿐인 나에게 까지 감사하다는 메시지 카드를 준비한 모습에 탄복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일본인의 세밀한 촉수와 의전(儀典,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에 특화된 모습은 개개인의 특수성이 아닌 국민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상화된 디테일에 놀라곤 하는데 이날도 그것을 깊이 경험했다.
참석자들은 기립해서 박수로 선생님들을 맞이하고, 음료수로 건배사를 진행하며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참석하지 않은 분들을 배려해 sns에 사은회 관련 사항은 개제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 또한 빼놓지 않았다. (그 당부에 유념하여 구체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선생님들의 인사말을 듣고, 환대 속에 선생님들을 배웅하며 2시간의 사은회를 마쳤다.
이제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다. 감동과 기쁨 아쉬움 감사 긴장 벅참 등 갖가지 감정들이 오간 긴 시간을 마치자 큰 피로감이 몰려왔다. 감정적으로 기복이 큰 일들이나 벅차고 기쁜 감정 등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는 감정들을 겪고 난 뒤면 '살아가는 일'에 관한 생각이 찾아온다.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오로지 나만의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동안 있었을 수없이 많은 졸업식을 생각해 보면, 이미 이 시간을 지나간 사람들의 삶과 새로울 것이 없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 생생하게 경험하고 느꼈던 눈물과 기쁨과 설렘과 벅참 그 모든 감정들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므로. 이것에 특별한 의미나 앞으로의 목적, 거창한 계획이 있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삶을 충실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이것 아닐까. 오로지 '나'만 경험할 수 있는 나만의 그 마음을 생생하게 누리기 위해. 다시 매너리즘이 찾아오는 날이 있겠지만, 그렇게 졸업식을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안고 유치원을 떠났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덧. 생활 간에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일본은 '행사'에 진심이며 그것은 의상과 격식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졸업식에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슈트를 여자 아이들은 원피스나 정장을 입었고, 기모노를 입은 여자 아이들도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는 '진주(眞珠/珍珠, Pearl )'가 각별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주요 행사 간에 자주 등장하는 '진주'는 깊은 의미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상징적인 존재 아닐까. 그날도 주변을 보니 진주목걸이와 진주귀걸이 이외에도 머리핀, 핸드폰줄 등 대부분 진주가 들어간 물건을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날 입은 나의 소매 끝단에도 '진주'가 장식되어 있었다.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진주'가 들어간 물건이 반드시 고가(高價) 일 필요는 없음을 증명하듯 핸드폰줄이나 머리핀을 장식하는 캐주얼한 형태의 진주도 많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