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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r 14. 2024

마지막 도시락을 만들며

'이시절'의 너와의 헤어짐을 준비하며

괜찮다면, 아이의 도시락에 카드를 붙여줘.

 일본인 친구에게 사려 깊은 문자를 받았다. 일본 유치원은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몰래 마지막 도시락에 메시지 카드를 붙인다고(幼稚園のお母さんたちは、多くの人が子供には内緒で、最後のお弁当の時に、お弁当に メッセージカード をつけます。). 필수는 아니지만 카드가 있는 아이를 보며 카드가 없는 아이는 실망할지도 모른다며 친구는 나를 배려해 유치원 마지막 도시락을 앞두고 일본 문화에 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와 합작으로 만든 마지막 마인크래프트 도시락

 전날 미리 카드를 준비해 두고, 아이에게 마지막 도시락으로 희망하는 메뉴를 물었더니 최근에 빠진 '마인크래프트' 폭탄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며 가지고 있는 레고 부품을 보여주었다. 엄청 어려운 난이도는 아닐 것 같아, 전날 미리 김을 얇게 오려두고 왠지 살짝 긴장되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반찬은 아이가 주문한 소시지를 넣은 채소(당근, 양파, 시금치) 계란말이와 (편의점 표) 함박스테이크를, 계절과일은 딸기를 준비했다. 한참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데 아이가 합세해 김공예에 돌입했고, 판다도 만들어 달라고 메뉴를 추가해 어설픈 판다까지 만들었다. 서프라이즈 메시지 카드를 끝으로 마지막 도시락을 완성한 뒤, 먼저 든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마지막 유치원 도시락과 곧 있을 유치원 졸업식. 나의 섭섭함의 이유는 명백했다. '이 시절의 이 아이'를 보내야 한다는 것. 아이는 정말이지 자라 가는 모습을 만끽하고 감정 이입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정말 순식간에 자라 버린다.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아기 때의 이 아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듯, 이 시절의 이 꼬마 아이와 헤어짐의 시간이 오는 것이 나는.. 음.. 슬프다. 일본인 친구는 '쓸쓸하다, 적적하다'로 번역되는 단어(さみしい, 寂しい)로 그 감정을 표현하던데,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슬픔은 아니고 외로움 쓸쓸함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그립다'정도일까. 내가 아는 단어로는 복잡 미묘한 이 감정을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단어를 입혀 글을 쓰자면 나는 슬펐다. 

마지막 도시락과 메세지카드
늘 당당하게 나아가기를

 살다 보면 이성(理性)의 영역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영역의 존재가 나는 버겁지만 너무 좋다. 누군가를 누군가 답게 만드는 일은 그 영역에 머무는 순간 아닐까. 내게는 아이와 함께하는 일이 그랬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이토록 깊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물론 아이는 아이 나는 나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깊게 빠져 휘둘리게 되고, 그 휘둘림의 많은 부분은 자발적이고 행복한 휘둘림이라 생각한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아이와 함께 하며 이 감정이 깨지며 화가 나는 순간이 다시 올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성적으로 돌아보면 나는 아이를 통해 겪어본 적 없는 영역의 감정에 가 닿아 보고, 어제보다는 아주 조금 더 깊어진 사람이 된다. 

찬란했던 작품의 날들도 안녕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도시락 관련 칼럼은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587

행복한 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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