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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05. 2024

'사랑'의 다른 표현들

개인적인 결혼의 본질

 결혼 후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느낌'을 가장 중시하는 나는 당시의 '느낌'에 따라 느낌이 오는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은 시작이었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수없이 들었던 관용구를 결혼 후 비로소 진심으로 이해했다. 결혼은 현실이고, 삶이고, 완성이 아닌 과정이었다. 

 결혼의 가장 현실적이고 큰 측면 중 하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함' 아닐까. '집안일'로 표현되기도 하는 그것. 처음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한 명이 요리를 하면, 다른 한 명은 설거지를 하는 방식으로 집안일을 나누었으나 가끔의 언쟁 외에는 빨래 청소 등등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시의 그것은 엄청 큰 화두가 아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것이 본격적인 형상을 갖춘 존재가 된 것은 아이가 태어난 후였다. 수없이 손이 가는 신생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장 설레는 말은 "사랑해"보다는 "내가 할게"라는 말이라는 글에 엄청나게 공감이 되었다. 

 누군가 눈치껏 나서주길 바라기에 육아는 분주하고 복잡함의 연속이었고, 삶의 질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우선 한 명은 아이 옆에서 밀착 돌봄을 전담하고 한 명은 그 외의 일(젖병소독, 분유제조, 빨래 등등. )로 영역을 구분했지만 그것은 몹시 정확하게 영역을 구분하고, 나의 일이 아니면 손끝조차 나서지 않는 영역의 일이 결코 아니었다. 

 사회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고, 돌봄 선생님을 고용하며 육아 부담은 줄었지만 존재감이 공론화된 '집안일' 내지 '살림'의 존재감은 커져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답은 조금씩 명확해졌다. 모든 것은 '합(合)'을 맞춰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정해진 것도, 끝내 고정되는 것은 없다. 순간순간 상황에 따른 합을 맞추고, 조율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것. 그게 현실이었고, 그래서 삶이 계속되는 한 '완성'이 없듯 결혼 생활에 온전한 '완성'은 없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이해하고 조율하기에 앞서서 개인적으로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느껴지는 일들은 있었다. 아무것도 공론화하지 않았는데 샤워실 배수구와 같은 공간을 먼저 청소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서, 화장실을 청소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라 읽히는 사랑의 다른 표현을 읽는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아마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리라.)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도 물론 진심이 담기지만, 어쩌면 결혼생활의 사랑은 그보다는 좀 더 포괄적이고 깊고 복잡한 개념인지 모른다. 상대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는 것,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상대가 원하는 곳에 동행해 주는 것, 귀찮은 상황에 상대보다 먼저 나서는 것, 상대의 원 가족(친정, 시가)을 기억해 주는 것, 상대의 마음의 소망을 바라봐 주는 것. 무한하고, 끝없이 가변적인 사랑들을 표현하고 찾아내고 합을 맞춰 가는 것. 그것이 결혼생활의 본질이 아닐까. 

 미처 그것을 끝내 모두 알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날 동안 사랑의 다른 표현들을 많이 발견하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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