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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04. 2024

나의 달리기에 관하여

달리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임경선 작가님이다.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그분의 모든 글을 애정하지만, 특히 편애하는 쪽은 역시 에세이이다. 아름다우며 군더더기 없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쓰인 그의 문장들. 때로는 날이 서있고, 때로는 정곡을 찌르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마음 온도가 결코 차갑지 않은 그의 문장들. 아마도 그분의 성정을 닮았으리라 예상되는 그의 글을 많이 좋아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분의 영향이 크다. 틈틈이 확인하는 그분의 근황에는 달리기에 관한 피드가 자주 등장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달리고 싶었던 마음에 그분의 피드가 본격 불을 질렀음은 확실하다. 그날로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2020년 9월 마지막날 저녁이었다. 

 본격적으로 의상을 준비하고 러닝화 등의 장비를 갖추고 수선을 떨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아 일단 달리러 나갔다. 집에 있던 옷차림 그대로에 운동화만 신고 아직 어렸던 아이와 함께 가을의 저녁을 아주 잠시 달렸다. 달리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제부터 아침저녁 매일 뛰어보자고. 지킬 것은 하나였다. 무리하지 말 것. 무리하면 다음날 달리기 싫어지니깐 절대 무리하지 말고 어쨌든 뛰어보자고. 꾸준히 뛰어보자고.

 달려보니 아침저녁 달린다는 것이 이미 무리였기에 다음날로 저녁 달리기는 접었다. 달리기에는 아침 공복이 좋았고, 달리기를 일찍 끝내놔야 그날의 숙제를 마친 기분이어서 편했다. 또한, 준비 없이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것을 안 좋아하는 나는 상대적으로 길에 사람이 적은 아침 달리기가 적성에 맞았다. 달리기의 흐름이 끊기면 멀어지게 될까 봐 한때는 여행길에 운동화를 챙길 정도로 유난을 떨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덕분에 달리기는 조금은 나의 일부가 되었고, 일본으로 이사 올 때 다행히 달리기도 따라왔다.

 일본에 오니 더더욱 달리기를 놓을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내가 사는 지역이야 말로 달리기에 최적화된 지역이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아침 이 동네를 전세 낸 듯 달리며 풍요로웠다. 시청 앞마당이나, 집에서 멀지 않은 강다리, 집 앞의 한산한 길을 달리다 보면 딱히 삶에서 뭔가 아쉽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인적이 많지 않은 길에서 기인하는 무서움은 없었다. 이미 밝은 시간이었고, 차들은 많이 다니고 있었으니깐. 그리고 일본은 치안이 제법 안정적인 편이었고 매너가 좋은 분들이 많았다. 멀찌감치 달려오는 나를 보며 지나가던 분들은 달리기에 방해가 될까 봐 빠르게 한쪽으로 비켜 길을 내주었고, 건널목의 차들은 미안할 정도로 일찍이 멈춰서 기다려 주었다. 무엇보다 아는 얼굴을 우연히 마주칠 일이 드문 이곳에서는 심적으로 더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이따금 아는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오가는 길에 안면이 생긴 분들이나 달리는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긴 하지만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인사하게 되었다. 드물지만 달리는 나에게 간밧데(頑張って, 힘내)를 날려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의 아침 나와바리

 달리는 나를 좋아한다. 손꼽게 좋아하는 나의 모습 중 하나는 달리는 모습이다. 그 자체가 그냥 좋아 보인다. 그 모습 자체가 좋은 것이 외적인 이점이라면 내적인 이점 또한 크다. 달리는 동안 머릿속으로 많은 일들이 오고 간다. 많은 문장들이 만들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무념무상으로 달리기도 하지만 달리는 동안 많은 일들과 사람들이 머릿속을 들어왔다 나가며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 순간 오가는 일들은 부정적인 결론으로 연결 짓기 어렵다. 어떻게든 잘 풀리리라는 믿음, 오늘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 달릴힘이 있다면 오늘을 이겨낼 수 있겠다는 마음. '나는 그래서 달리는구나'라고 달리며 알아간다. (그리고 굳이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마지막 하나. 나는! 살이 찌고 싶지 않다. )

 달리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늘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는 달리기는 어쩌면 끝내 나와 한 몸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생각한다. 놓지 말자고. 곁에 두자고. 달리기에 좋은 이 계절 달리며 생각한다. 이 계절 이 관계를 더욱 곤고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 좀처럼 뗄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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