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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20. 2024

반전은 없다.

넌 어쩌다 여기 온 거야?

 불길한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나를 알기 때문에 미리 불길했는지도 모른다. 밤마다 나는 다음날 눈뜨자마자 훈육장교님을 찾아가 퇴소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떨다 잠들었고, 예감대로 그것은 (꽤 긴 시간) 매일 반복되고 있다.

 밤이 주는 용기에 기댔던 나를 다음날 기다리는 것은 바쁜 현실이었다. 일어났으니 일단 아침 점호와 체력단련을 하고 씻고 집합해서 밥을 먹으면 교육에 참석할 시간이 된다. 그러다 보면 바쁘고 정신없고, 간밤의 용기도 사라져 바쁜 상황이 빚어내는 조급함이 훈육장교님을 찾아가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또 정신없이 훈련을 받다 보면 견딤을 아주 조금이나마 도와주는 날마다의 이유가 생겨 있다. 훈련이 생각보다 무난해서,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교장(敎場)이 가까워서, 이온음료가 맛있어서, 날이 덥지 않아서, 실내 수업이라서, 교육이 늦게 끝나 오후 체력단련을 빼먹을 수 있어서, 동기들이 따뜻해서, 동기들이 많이 따뜻해서... 그러다 보니 오늘은 일단 버텨볼까 하며 시간이 흘렀고 밤에는 다시 다음날의 퇴소를 기약하며 잠이 들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어쩌면 나는 나의 용기 없음을 덮으려고 어떻게든 나를 합리화할 변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제로 훈련이 조금은 견딜 만 한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버틸 수 있어서 결국 나를 달랬던 건 아니었을까. 설령 그게 아니라 해도 이제는 늦었다.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이제는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임관해야 한다.

 가(假) 입교 기간과 화생방, 수류탄, 각개전투, 사격, 분대 공방, 독도법..까지 끝났다. 그만둔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시점도 지났고 고생한 것도 아깝다. 이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만둔다고 말할 용기도 여전히 없다.

 가장 위안인 것은 함께 훈련받는 동기들의 존재다.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있다. 남자 동기들은 여전히 우리를 자주 신기해한다. 그동안 자신들의 세계에서 주로 봐왔던 유형의 여자들이 아니니깐 이런 질문도 한다. "내 여자친구는 적게 먹던데, 너네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어?" 한 아이는 태연하게 답한다. "너네 여자친구도 여기 와서 각개전투하고, 구보 뛰고, 완전군장 메고 행군해 보라고 해." 이렇게 말하는 애들도 있다. "너네는 왜 안 쓰러져? 안 힘들어? 너네가 좀 쓰러져야 우리도 좀 쉴 텐데 어떻게 우리보다 더 안 쓰러지냐." 실망하는 눈치다. 우리도 똑같다. 누구라도 살짝 쓰러져서 어떠한 이유로든 훈련이 중단되기를 모두 바라고 있다. 아무튼 다 같이 훈련을 받으니 힘든 중에도 웃을 일은 있다.

 여자 동기들은 내 눈에도 흥미로운 아이들이 많다. 가끔 40명 남짓 한 중대 여자 동기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다들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일단 '여자 군인'하면 단번에 떠올릴만한 여전사 혹은 강인한 이미지의 친구들이 많다. 경찰학과나 군사학과, 체대 출신의 그들은 오래도록 이 길을 준비해 왔고, 살펴보면 천성적으로 타고난 부분이 있다. 그 성량과 외적인 분위기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근데 꼭 그런 유형이 아니어도 내가 보기엔 군 생활 간에 스스로에게 기댈만한 구석이 하나씩은 있어 보인다.

 깡이 있거나, 체력이 좋거나, 성격이 서글서글하거나, 꺾이지 않는 기개가 있거나 눈치가 있어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실력이 뛰어나거나, 목소리가 크거나 하다못해 뭐든 잘하지는 않아도 못하지도 않아 중간 정도로 묻어갈 수는 있는 능력이라도 있다. 다들 무리 없이 군 생활 잘할 것 같다. 나 빼고.

 나는.. 일반적으로 여자 군인을 생각했을 때 떠올릴만한 이미지의 정확하게 반대 부류에 있는 유형 같다. 사람 눈은 다 비슷한지 "넌 어쩌다 여기 온 거야?" 소리를 자주 듣는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비롯된 질문이겠지만, 희소성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군에서 희소한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나의 군 생활의 스포 아닐까.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듯, 안 될성싶은 나무도 떡잎부터 다를 테니.  

 군인에 적합하지 않은 나의 성격 중 훈련에 가장 방해되는 성격 유형은 바로 '부끄러움'이다. 나는 엉뚱한 포인트에서 창피하고, 내 기준에서 대부분의 훈련은 부끄러움의 연장선상에 있어 더 소극적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부끄러움이 대부분의 사람과 공감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에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각개전투 시간에 총을 들고 소리 지르며 언덕을 뛰어올라가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들 어떻게 하면 빨리 달릴까를 고민하는 시간 나는 그 장면을 연상하니 몹시 쪽팔렸다. '총을 들고 소리 지르면서 저기까지 뛰어가라고? 심지어 한 명씩? 창피하게 그런 걸 어떻게 해?'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뛰었다. 기분 탓인가? 곧 조교는 말했다. "교육생은 교육장에서 걷지 않습니다." 공개적이었던 그의 발언을 감안하면 나를 저격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걷지 않았다.

 또 이런 포인트도 있다. 내 기준에는 식사시간이 짧다. 그렇다면 빨리 한 번에 많이 먹어야 하는데, 밥을 한입에 그렇게 많이 먹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차라리 남기기를 택한다. 어쩔 수 없는 그런 부끄러움은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된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기가 "진짜 여성스럽다."라고 해서 얹힐 뻔했다.

그런 남들과 다른 포인트의 부끄러움은 군에서의 오답이다. 어쩌면 나는 천성이 군대의 오답 인지도 모른다. 실제 군 생활은 다를 수 있지만 후보생 생활은 그렇다.

 결코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의 포인트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 눈치는 있다. 그럼에도 자칫 별로일 수 있는 내가 미움받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나는 그냥 나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증거는 명확하다. 못해도 너무 못하니깐. 그 모든 편견을 깔끔하게 실력으로 압도하면 좋겠지만, 아무 반전 없이 보이는 그대로 너무 못하니깐.

 나는 너무 못해서 언제나 두드러진다. 복도 한가운데 붙어있는 벌점 모음 표는 압도적으로 나의 그래프가 높고, 어딜 가나 지적을 받는다. 그런 척이 아닌 원래 그런 사람인 나를 같은 생활관 친구들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우리는 이제 전우애로 엮였다. 그리고 남자 동기들은 나를 좋아한다(고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견딜 수 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집단에서는 견디기 쉬우니깐.  

 결국 군인으로서 나의 비전은 암담한 것 아닐까? 아니면 이것은 후보생 과정일 뿐 실무를 하는 자대에서 의외로 나는 선전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현재까지 나는 늘 꼴찌였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늘 아침 구보 시간에도 훈육장교님은 내가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모든 후보생들이 다 구보를 마쳤다고 결론지으셨다. 몸으로 하는 것만 심하게 못한다면 '행정, 정책'쪽 재능을 기대하겠지만, 실내 수업도 고전 중이다. 졸다 보면 수업이 끝나있고, 수업 직후 진행되는 쪽지시험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해서 궁금하지조차 않다. 일등이 괜히 일등이 아닌 듯, 꼴찌 또한 괜히 꼴찌가 아니다.

 '천상여자'로 왜곡되었다고 생각한 이미지를 강인함으로 바꾸기는커녕 군대에 오니 더 두드러진다. 이 집단이 오래도록 강인하고 우수한 여자들을 선발해 구축해 온 이미지를 내게 덧입히기는커녕 이 집단에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 늘리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이제는 그저 임관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 본질적인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의도로든 내게 "넌 어쩌다 여기 온 거야?"라고 물으면, 현재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다소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말한다. "나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었어." 뒷말은 이제 삼켜야 한다. "근데 잘못 온 거 같아."

 어쨌든 남은 시간들을 버티고 임관한다면... 나는 소대장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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