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야전(野戰)으로
소대장이 되고 싶었다.
입대 전 상상했던 군인은 전투복을 입고 야전(野戰)을 누비는 모습이었다. 뭔지도 모르는 '야전(野戰, 들에서 하는 싸움 )'이라는 단어도 왠지 좋았다. 그게 군인의 일의 전부라 생각했다. 배워보니 군인의 일은 많았고, 장교의 일은 지휘관과 참모 업무로 나뉜다고 알게 됐지만 결론은 같다. 입대하며 그렸던 모습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었으니깐. 바람대로 소대장 보직을 받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의 탄약 부대로 발령받았다.
8개월을 준비했다. 입대해서 16주간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고, 임관해 16주의 병과 교육까지 받았다. 예상대로 반전은 없었다. 200명 남짓한 전체 여군 사관후보생 중 임관 성적은 거의 꼴찌(내 뒤 두 명은 갈비뼈에 금 갔거나 다친 애들일 것으로 예상된다.)였고, 병과 교육 성적은 '수료'에 그쳤을 게 뻔하다.
어쨌든 자격이 주어졌다. 이제 제일 중요한 야전에서 살아남기가 남았다. 8개월간 준비한 목적. 군인으로서 나의 존재가치가 될 일. 실제야 어떻든, 소대장을 할 만해서 소대장이 된 거라고 믿어야 한다. 믿는 수밖에 없다.
근데.. 너무 떨린다. 그저께부터 잠을 설치고 있다. 마음을 추스르고 위병소 지났는데 안 봐도 알겠다. 다 나 보고 있는 거. 여자 군인으로 지내는 동안은 익숙해져야 한다. 비주얼 불문 일단 시선이 얼굴에 꽂히는 거. 교육기관에서는 동기들이랑 같이 다녀서 그렇게까지 못 느꼈는데 자대에는 여자 군인이 거의 없으니 확 느껴진다. 전투모가 있어서 다행이다. 얼른 행정과로 가자.
행정과에서 기다리던 선임 소대장들을 보니 조금 안심이다. 괜찮아 보인다. 그런 거 있지 않나. 누구를 딱 봤을 때 어렴풋이 느껴지는 직관적인 이미지. 선임 소대장들을 분류해 본다면 유쾌하지만 가볍지는 않은 느낌? 물론 겪어봐야겠지만. 그리고 내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랑 같은 과(科) 같지는 않아 보여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설명하는 건 사실 분위기 아닐까. 그래서 상대를 처음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상대를 알아버리는지도 모른다. 근데 조금 얘기해 보니 선임들 괜찮은 사람들 맞는 것 같다. 선임으로 믿고 잘 따라가면 될 것 같다. 난 이제 진짜 많이 배워야 한다.
안 그런 척 부단히 노력할 뿐 낯을 많이 가린다. 어쩌면 '낯'을 내세워 사람을 가리는지도 모른다. 상대에 따라 성격도 달라진다. 따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상대에게 가장 적합할 만한 성향을 취사선택해 내보내려고 한다. 지내다 보면 그렇게 된다. 단체생활은 어려우니깐 그렇게라도 맞춰가며 최대한 멀쩡해 보이고 싶다. 그래서 유쾌한 사람들이랑 있을 때가 편하다. 유쾌하고 산뜻한, 텁텁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 내가 그런 사람이 못되니 그런 사람들이 좋고 부럽다. 선임 소대장들은 그런 유형 같다. 지켜보니 둘 사이 케미도 좋다. 소대장 무리에 잘 스며들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다행이다. 대학을 휴학했더니 선임들은 나보다 어리지만, 저쪽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상관없다. 어차피 여긴 군대니 깐. 둘 다 전역 자원이던데 두 분은 말년에 군 생활 꼬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이제 중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하필 오늘 전(全) 부대원 교육이 있어 일단 강당에 가야 한다. 아직 중대도 못 가봤는데.. 전체 부대원이 한자리에? 순차적으로 적응하고 싶은데... 긴장된다. 강당 가면서 선임은 알려준다. 같은 소대장들끼리는 충! 성! 2음절로 경례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경례하라고. 없어 보인다고.
전(全) 부대원이 모인 강당에 가니 침묵 속에서도 여자 사람 뉴페이스를 보는 시선은 느껴진다. 실내라 지금은 전투모도 없다. 잠을 설쳐서 초췌한 상태인 것도 신경 쓰인다. 다행히 선임들이랑 빠르게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공식 전입신고는 아직이라 일단 구석에 그냥 있으면 되니 좀 낫다. 우리 소대원들은 저쪽에 있다고 했지? 이따 살짝 봐야겠다.
다음 일정은 창장님 전입신고랑 부서별 인사 및 견학이라던데. 나가면서 선임들 따라서 부대 소대장 무리에도 인사하고 왔다. 부대 소대장들은 나까지 12명. 배운 대로 한 명 한 명 경례를 하고 악수할 때 관등성명을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는데 소대장들끼리는 그렇게 까지는 않는다니 관뒀다. 예의 없어 보이지는 않았겠지?
이제 선임들은 일하러 간다. 자기네는 전입 온 날 예초기 메고 바로 현장에 일하러 갔다며 부럽다고 한다. 나도 현장 따라가도 되는데...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 행정과로 가자. 계획된 일정 다 마치면 중대에는 오후 늦게나 가서 신고하겠다. 소대장 취임식도 오늘인데... 취임사도 다시 살펴봐야겠다. 곧 소대원들이랑 공식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니 떨린다. 잘할 수 있겠지? 잘하자..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