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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27. 2024

나의 개인적인 당직 근무

당신들이 모르는 것들

 지금 나는 중대 당직사관 근무를 서고 있다. 일과를 마치고 17시부터 다음날 08시까지 당직 부사관(선임병) 두 명을 데리고 당직 근무를 선다. 오늘 함께 근무를 서고 있는 중대 아이는 붙임성이 좋아 근무 간에 나와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간혹 그런 아이들이 있다. 스몰토크에 능하고, 말주변이 좋고 유머 있는 아이들. 센스도 좋아 듣는 사람은 듣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유형의 아이들. 내 생각이지만 이런 유형은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이 있다. 오늘 함께 근무 서는 아이는 그런 유형이다. 아이는 한참 수다를 떨다가 이번에는 간부 이야기로 넘어간다. 함께 근무 서고 싶은 간부는 어떤 간부인지 들려준다. 역시 근무 시간에 많이 주무시거나(;) 성격은 까칠해도 본인들을 터치하지 않는 간부가 인기가 많다. 이해된다. 기피하는 간부도 알려준다. 듣다 보니.. 사람 눈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 물론 공감의 뜻을 내비치지는 않는다.

 센스 있는 이 아이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던 말도 알려준다. "소대장님도 잘 안 주무셔서 딱히... (인기가)"라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나는 군기가 살아있나?라고 해석할 뿐. 근데 한 가지는 알겠다. 나와 함께 근무 섰던 아이들이 대부분 갓 상병으로 진급했거나, 갓 분대장이 된 아이들이었고 선임 병장들이 보이지 않던 것이 기분 탓이 아니었음을. (아이들의 근무 순번은 간부들의 근무 표를 보고 아이들이 편성한다.) 설마 나한테 fm을 배우라고 갓 분대장이 된 아이들을 배려해 나에게 보냈을 리가... 물론 나는 fm도 아니다. 적게 잘뿐. 정확히는 아직 적게 잘뿐.

 조금씩 아이들과 친해지며 근무 간에 불편한 포인트가 생기고 있다. 근무 간에 눈에 띄는 지적사항들을 바로잡아 주는 일이 불편한 포인트 중 하나다. 직책 상 그리고 성격상 못 본 척 넘어갈 수 없으니 매끄럽게 지적하는 스킬이 내게는 필요하다. 정색은 빠른 방법이지만, 쓰고 나면... 그 후로 기분이 쭉 안 좋다. 정색 후에 자연스럽게 푸는 방법도 서툴러 그 길로 내 마음속에서 그 아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잘못은 고쳐주되 마음으로는 미워하지 말 것인데, 이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일이니 일단 방향 설정만 이렇게 해두어야겠다.

 그리고 당직 근무 간의 나의 핸디캡 중 하나는 순찰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생긴다는 점이다. 샤워장, 환복 시간대의 생활관 등등의 사각지대를 생각할 때 우려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행여나 있을지 모를 내무 부조리, 특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괴롭힘' 같은 것 그것을 내가 놓치면 어떡할까 하는 부분이 신경 쓰인다. 소대원들과는 지속적으로 면담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중대 전체의 움직임 또한 알고 있어야 하니깐... 정말이지 아직 모르는 건 너무 많고, 한가하려면 끝없이 한가할 수 있는데 바쁘려면 끝없이 바쁜 게 당직 근무인 것 같다.

 이렇게 근무 중에 머릿속으로 딴생각에 빠졌던 나는 잠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고요한 행정반. 당직 부사관 한 명은 졸고 있다. 음.. 일단은 그냥 두기로 한다. 역시 부지런한 지적을 일삼으려면 본인 자체가 흠잡을 곳이 없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나는 지금 다 귀찮다. 그래, 피곤하겠지... 그냥 두다가 이따가 순찰 갈 때 데리고 가야겠다.

 근데 아이들이 모르는 게 있다. 본인들만 근무상대로 선호하는 간부가 있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선호하는 근무 상대가 있다. 나의 취향을 말하자면 근무상대로 밝은 사람을 선호한다. 서서히 느껴진다. 군 생활에 찌든 분위기가 어떤 건지. 나도 다운되는 시간이 많아진다.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밝음을 유지하는 아이가 있다. 분명히 있다. 지켜보니 계급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계급을 달고 있어도 본인 같은 아이. 이등병 시절조차 밝음의 한끝을 간직하고, 시간이 지나도 지나치게 선임의 포스를 풍기지도 않는 그냥 자기 자신 같은 아이들. 가끔 있다. 진짜 있다. 나는 그런 유형과 근무 서는 것을 선호한다. 그 밝은 기운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하루 종일 탄약고에서 일하고 피곤한 밤샘 근무 가운데에도 행정반에 활기를 주는 힘. 나는 혼자서는 그런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유형이랑 있으면 같이 그 에너지에 편승할 수 있다. 적어도 그 에너지를 끌어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 근무 상대를 내심 선호한다. 그것을 케미라 해야 할까. 너희들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불편한 사람과는 같이 근무 서고 싶지 않단다.

 그리고 다들 모르겠지만 당직 근무를 서는 날 나는 1.6배 정도 바쁘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중대장님과 간부들이 출근해 함께 중대 회의를 마치면 다음날 09시. 영외 숙소에 사는 나는 퇴근할 수 없고, 잠시 쉬다가 점심 먹고 13시부터는 오후 일과에 투입해야 하니 3시간 남짓한 휴식이 주어진다. 다른 간부들은 본인의 boq에 가서 씻고 자거나, 간부 목욕탕에 가서 씻고 오기도 하는데 일단 나는 씻을 곳이 없다.

 물론 근무를 마치면 찌든 얼굴로 사라져, 잠이 덜 깬 얼굴로 나타나 오후 업무에 투입하는 간부도 종종 있지만 도저히 그런 캐릭터가 될 수 없는 나는 부지런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대 회의를 마친 뒤 잽싸게 간부 이발소에 가서 이발병을 내 보내고 문을 잠그고 머리부터 감는다. 다른 간부들이 오기 전에 빠르게 이용해야 한다. 다른 간부들에게 내가 문을 잠그고 그곳을 쓰고 있어서 자신들의 이용이 제한된다는 불편함을 알리고 싶지 않다. 간부 이발소의 문이 반투명 유리인 것은 굉장히 마음에 안 들지만(투명보다는 나으니깐) 어쨌든 젖은 머리로 이동할 수 없으니 드라이까지 빠르게 마치고 전투모를 눌러쓰고 본청에 있는 여자 휴게실로 이동한다. 여자 휴게실은 하필 창장님 방과 행정과 옆. 이동 중에 창장님이나 행정 과장님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신속하게 경례만 하고 사라지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그분들은 신경 써주시느라 이것저것 물어보실 때가 있다. 물론 엄청 감사하지만, 반가운 타이밍은 아니다. 심지어 차 한잔하자고 하실 때도 있다... 여차해서 휴게실에 가면 9시 반. 소대장들이 밥 먹으러 가자고 연락하기 전에 세수랑 기초화장까지 마치려면 그나마 잘 시간은 더 부족해진다. 예쁘게 보일 생각은 없다. 탄약 소대장(심지어 막내라 작업 소대장이다.)의 일이란 소대원들과 함께 탄약고 지역 제초작업과 건초 수거를 하고, 탄박스 까대기(무거운 물건을 운반하여 분류하는 일) 치는 일뿐이니.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자고 일어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로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심지어 야근하는 날도 있으니 더더욱 그 상태로 늦게까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두 시간 반? 많아야 세 시간쯤 잔다.

 또한 성급히 단정 짓기에 이르지만, 현재까지 지켜본 결과 이 집단에서는 노안인 분들이 종종(사실 내 기준에서는 조금 많이) 보인다. 근무 기간을 감안해 나이를 추측해 보면 아마도 광노화(光老化, 많은 양의 자외선을 자주 오랜 기간 쪼여서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현상.)와 수면 부족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수면 부족까지는 당장 어쩔 수 없지만, 늘 탄약고 현장에 있어야 하는 나는 광노화라도 필사적으로 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 자외선 차단제까지 듬뿍 바르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13시부터 오후 업무에 투입한다. 물론 멀쩡함을 유지하게 위해 혼자 바쁘게 보내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몰라야 한다... 내일 근무 교대 후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 해보니 벌써 피곤하다. 자정도 아직인데 퇴근하고 싶다. 근데 뭐지? 머지않아 나도 근무 중에 많이 자서 인기 간부로 등극할 것 같은 예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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