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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01. 2024

우리는 문고리에 서로의 세계를 걸어준다.

 문자가 온다. “今家にいますか?チーズケーキ買ってきましたからあげたいですけど、冷蔵庫に入れないとだめなので家にいたら連絡ください。(지금 집이에요? 치즈케이크 사 왔으니까 주고 싶은데 냉장고에 넣어야 하니 집에 있으면 연락 주세요.)” 다정한 문자가. 집에 있지만, 어제도 맛있는 샤인 머스캣을 받았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답했지만 곧 문고리를 확인하라는 답장이 온다.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고리에 앙증맞은 홋카이도(北海道) 치즈케이크가 야무지게 걸려있다. 우리는 문고리에 서로의 세계를 걸어준다    

 일본인 친구 N 과의 우정은 2년 전에 시작되었다. 후쿠오카로 이사 와 한창 적응하던 중 현지인 친구가 필요할 거라는 엄마의 조언이 있었다. 조언을 별다르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지내다 보니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오가며 인사만 하던 그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기에는 만남의 시간이 짧아, 초대를 생각했다. "もしよかったら遊びに来て下さい。(괜찮으시면 놀러 오세요.)“라는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여러 번 마음속으로 연습하며 그와 만나기를 기대하면서도, 떨리는 마음에 한편으로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우연히 마주치던 날 마침내 용기를 내 초대의 말을 건넸고, 놀라거나 당황치 않고 예상보다 훨씬 기뻐하던 그와 그날부터 친구가 되었다. 

다과를 준비해 초대할 때는 한국 식품을 함께 준비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끔씩 서로의 집을 오가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갔다. 그러던 그와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진 계기는 ‘문고리’였다. 한동안 코로나로 고전하고 있다는 그의 소식을 듣던 날, 때맞춰 집에는 선물 받은 특산품(お土産)들이 많았다. 외출을 못하고 있을 그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선물 받은 치즈케이크와 과일, 과자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가벼운 장난감을 그의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문자를 보냈다.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너무 감격해서 펑펑 울었다는 그의 답장에 덩달아 울컥했고, 그날로 우리의 친밀감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 

 그는 성품이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거주지가 일본일 뿐 진짜 일본 생활은 거의 모르는 나에게 그는 새로운 세계를 끝없이 열어주며 일본 문화 속 깊은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문화의 차이와 육아 경력의 부족으로 헤맸을 타국의 낯선 시간들을 그의 성품과 지혜에 기대 혼란을 최소화하며 건너갔다. 

 또한, 우리는 국적과 관계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통하는 부분이 많았고, 국적이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이(利) 점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의 서툰 외국어에서 비롯된 일종의 혜택이었다. 필요에 의한 일본어를 구사하지만, 원어민이 아닌 나는 일본어에 깊은 감정까지는 미처 담지 못한다. 덕분에 나는 일본어로 말하는 동안 주로 발랄한 성격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어로 교류하는 그와의 우정도 그 덕에 유쾌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다른 국적으로 인해 상대에게는 미지의 영역인 자신이 속한 넓고 풍부한 세계를 한계 없이 소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우정을 이어가는 우리의 우정은 ‘문고리’에서 정점을 찍는다. 우리는 서로의 문고리에 자신이 자란 문화의 먹거리를, 소개하고 싶은 정보를, 작은 선물을 걸어두며 받는 기쁨과 그보다 더 큰 주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천사가 다녀간 흔적

  예상치 못한 순간 집 문고리에 걸려 있는 다양한 선물을 볼 때면, 내게는 천사가 다녀간 흔적같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추석을 보냈다. 따뜻한 차(茶)를 마시며 그에게 선물 받은 치즈케이크를 먹다 보니 문득 한국의 명절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졌다. 평소 만들 일이 없던 명절 음식을 이 기회에 만들어 보기로 했다. 메뉴는, 실패가 적은 산적 꼬지와 일본에서도 이미 보편적인 잡채(チャプチェ). 

 작정하고 만들면 평소보다 훨씬 맛없게 만들어지는 어설픈 나의 요리를 조금 담아 그의 문고리에 걸어두고 한국의 추석(お盆休み)을 소개했다. 한국 본토의 맛은 이렇지 않다는 변명과 함께. 그의 가족이 처음으로 명절 요리를 맛본다고 생각하니 요리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뿌듯하긴 했다.  

 그렇게 문고리를 통해 부단히 서로의 세계를 오가고 있는 그에게 명절 요리와 더불어 나의 꿈 한 조각도 건넸다. 언제나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그에게 최근에 마음에 깃든 나의 소망을 알려주고 싶어서. 곧 문자가 온다. 

”わぁ~~素敵な夢です。全力で応援します‼(와! 멋진 꿈이에요. 온 힘을 다해 응원할게요!)“

 진심이 가득 담긴 문자에 다시 가슴이 뛴다. 나는 확신한다. 문고리를 통해 서로가 속한 세계를 오가는 이 우정을 멈출 수 없음을.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을 방문해 주심을 환영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07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덧 10월입니다. 이번달도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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