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 일본도, 후쿠오카(福岡)도 아닌 우리 동네에. 매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 공간에 대한 인지능력이 희미해짐이 분명하다. 이른 아침 달리기를 할 때 매일 익숙한 풍경을 지나치며 생각한다. 나는 단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고. 일상을 비껴간 공간에 존재하는 한 신비로운 장소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킷사텐(喫茶店)’. 사랑하는 킷사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 매력적인 공간을. ‘킷사텐’의 사전적 의미는 ‘커피∙홍차 등 음료나 가벼운 식사를 제공하는 찻집, 카페, 또는 음식점’이지만 건조한 표현으로는 그곳을 조금도 설명할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커피와 차, 간단한 식사는 그 공간의 부수적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은 오랜 역사가 담긴 문화적 기능을 갖춘 복합 공간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 또한 킷사텐을 설명하기에 조금도 충분치 않다. 어떤 평면적인 글로도 그곳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가끔은 그 특별한 공간에 방문한다. 곳곳에 있는 동네의 시작과 역사를 같이 했을 만큼 낡고 오래된 킷사텐에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찾아간다. 낡았지만 청결한 다(茶)기와 손글씨로 벽에 붙인 메뉴판, 세월의 흔적이 여실한 나무 테이블, 공간에 희미하게 베어버린 담배 냄새까지. 어느 것 하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 게 없다. 어두운 조명까지 합세해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공간과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루고 있다. 킷사텐과 역사를 함께 하셨을 것이 분명한 나이 많으신 사장님은 실험실의 도구와 흡사한 기구를 이용해 커피를 내려주신다. 뿔테안경과 조금의 염색을 거치지 않은 흰머리, 낡았지만 단정한 의상. 공간의 주인 또한 위화감 없이 공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피를 마시기 전에 이미 짐작할 수 있다. 긴 시간의 노련함이 몸에 밴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맛이라는 것을.
이 킷사텐을 일상의 공간으로 이용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호기심에 주변을 살펴본다. 공간이 주는 마법 덕분일까? 어떤 일을 하던, 실제보다 근사해 보이는 후광을 얹어준다. 수다를 떨어도 시사나 문학을 논할 것 같고, 단순 신문만 넘기고 있어도 지적인 이미지가 얹히는 후광. 손님들의 연령대를 보며 확신한다. 역시 이 공간은 오랜 시간을 통해 비로소 공간의 고유함이 완성된다는 것을. 공간과 궤를 같이 하는 주인과, 비슷한 연령의 단골손님들과 더불어 이 공간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이 된다. 단골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아무런 주문 없이도 원하는 메뉴를 내어주는 다정함을 벗해서.
반면, 도시의 킷사텐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번화가의 한 가운데 혹은 백화점에 입점된 그들은 활기차고 당당하다. 도도하고 세련되었지만, 킷사텐 특유의 분위기만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되어주는 고유함을 영리한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실험기구를 연상시키는 장비로 내린 커피, 흰 가운을 입은 커피 제조사(왠지 킷사텐과 바리스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커피를 손님의 잔에 직접 따라주는 웨이터까지. 덕분에 킷사텐에 있으면 바깥세상과는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온 느낌이 든다. 아니, 어쩌면 이곳은 정말 다른 세계일지 모른다.
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품위 있는 음악과 더불어, 함께 곁들일 수 있는 클래식한 파스타나 샌드위치는 공간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특별하지 않고, 설레지 않기 어렵다. 모르는 사이 상대에게 숨겨진 속마음을 꺼내고, 친밀한 사람과의 친밀감은 깊어진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이곳에서 글을 쓰겠다고. 공간이 주는 마법에 기대 아름다운 글을 쓰겠다고. 이 공간에서 내가 쓰는 글이 아닌, 마음이 불러주는 글을 쓰겠다고.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날 곁들임 메뉴는 정해져 있다. 언젠가 부모님과 함께 먹었던 그날의 달콤한 푸딩으로.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오늘도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838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의 하카타(博多) 킷사텐 정보는 아래에 있습니다. 날이 아직 많이 덥네요. 건강조심하시고,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편안한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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