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이라도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없었다는 것을.
소대장 생활은 나의 지나간 날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인생에서 그만큼의 강렬함을 경험했던 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의 인생에 강렬하고 고유한 색감을 더해준 일 중 하나는 분명 소대장으로 지냈던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끝이 보이지 않던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과연 이 시간들이 끝나는 날이 올까, 그 끝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성장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는 더 단조로운 빛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소대장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으나, 좋아했다. 그 시간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문득 소대원들이 전해준 편지나 메일을 보면 그때의 순수했던 열정의 시간들이 너무 귀해서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군생활의 긴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2011년 11월. 드디어 3년간의 소대장 생활을 마무리 짓고 부대를 옮기게 되었다. 군생활을 처음 시작한 부대였고 오래 근무했던 부대였는데 마지막 날이 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기병과의 탄약부대는 중소위 보직이 많지 않다. 부대의 공석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대위 전까지 한 보직을 오래 하는 편이고, 진급 발표 후 새 보직을 맡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 부대에 공석이 없었기에, 소대장의 생활을 마무리 짓고 진급 후 부대이동시기에 이동하는 방안으로 결정되었다. 전역까지 남은 시간은 1년 8개월. 마침내 소대장의 일을 마무리 짓고 떠날 때가 되었다.
임관해서 소대장 보직을 받은 뒤, 중소위 시절을 고스란히 보내고 대위 진급 후 대리 중대장의 역할까지 맡으며 보냈던 나의 2 탄약중대 생활을 돌아보니 좋았던 날도, 즐거웠던 날도, 보람 있던 날도, 슬펐던 날도, 힘들었던 날들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없었다.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부딪치고 상처받고 쓰라리게 아파하고 좌절했던 기억들. 그 모든 시간들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그 기억이 더 희미해져서 사라져 버리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깊이 내 안에 새기고 싶었다.
마지막 날은 수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일정은 간단했다. 출근해서 오전에 부대장님께 전출신고를 하고 점심 즈음 부대를 떠나는 일정이었다. 중대본부에 가서 전출 신고를 마치고 중대로 돌아오니 나를 위한 환송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동안 지냈던 소대장 생활이 영상으로 제작되어 있었고, 중대원들의 롤링페이퍼가 선물로 준비되어있었다. 마음이 담긴 귀한 선물에 가슴이 뭉클했다. 보관이 쉽도록 코팅까지 되어있던 그 롤링페이퍼를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함께 영상을 시청하고, 마지막으로 모두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는 조금 울컥하고 말았다.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들과 그 시간 속의 그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력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것이며, 나의 삶도 보람 있을 것 같다는 인사를 건네는데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들이 남은 군생활을 잘 마치기를, 때가 되어 군을 떠나 사회에 나가 늘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마지막으로 부대 곳곳에 들려 함께 했던 분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행정 계원들의 배웅을 끝으로 나는 부대를 떠났다.
다시는 그 부대에 갈 일도, 우연이 아니라면 그들과 더는 마주 칠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대가 있던 창원은 더 이상 나에게 단순 하나의 도시는 아니게 되었다. '창원'이라는 한 단어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시간 속에 나와 그때의 군 생활까지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마지막에 관한 글은 선뜻 쓰기가 어려웠다. 그 시간들과의 이별이 될까 봐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 시간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뿐임을 안다. 그렇게 한 시절을 마무리 짓고 추억과 배움을 갖고 한걸음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수록 그 발걸음은 가벼울 것이다. 창원을 떠난 뒤에는 지난날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롭게 주어진 업무를 해내기에도 너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가끔씩 나를 잊지 않고 연락을 주는 소대원들과 옛 인연들을 통해 문득씩 그곳을 추억할 뿐이었다. 군 생활을 오래 했다면 소대장 생활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정도로 군의 일은 많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잊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어느 한때 소대장으로 지냈던 시간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일상을 살아가며 지치는 어느 날 가끔씩 떠올리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많이 감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