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폭력(暴力)은 무엇인가
점핑의 시간이 왔다. 중위가 되었고, 가르침을 주던 사수는 전역했다. 후임이 들어왔으며, 부소대장이 생기고, 중대장님이 바뀌었다. 고민 끝에 선택의 폭은 넓을수록 좋을 것 같아, 1차 장기 복무를 신청했으며 떨어졌다. 실망이 아닌 안도감이 들었고 그래서 기뻤다.(주변의 위로에는 고맙다고 답했다.) 나의 군 생활은 여전히 나의 빛깔을 품고 흘러가고 있다. 매일 헤매고 자주 아파하고 공허하고 가끔 기뻐하고 가끔 보람을 느끼고 종종 도망을 치고 휴가를 떠나는 생활들. 친구라 이름할만한 사람들도 생겼다. 옆 부대에 근무하는 동기의 친구들과 종종 어울리며 일상에 하나씩 쉼표를 찍고 있다. 그들을 통해 이해관계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이 주는 평온함을 감각한다.
그러다 보니 점핑(jumping)의 시간이 찾아왔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몰고 온 새 기운에 편승해야 할 시점이다. 계급적 점핑을 넘은 실제적 점핑이 필요하다. 아니, 절실하다. 나는 알아야 할 것들이 무한하다. 조직의 리더가 바뀌니 구성원 교체와는 다르게 그 기운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새 중대장님의 의욕이 뜨겁게 담긴 눈빛과 작은 것 하나 예사로 지나치지 않는 호기심. 당분간 그 속에 담겨있을 배움을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중대의 첫 후임. 초임 장교의 날이 서있는 후임을 보니(나도 그랬을까.) 그 아이 앞에서 덜 어설프고 싶은 마음이 든다.
폭력(暴力). 최근 틈틈이 생각하는 단어는 폭력이다.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군 생활의 본질은 '조직 생활'이었다는 것을. 나의 자리는 물론, 나의 정체성조차 없던 조직에 나의 자리를 만드는 일은 자주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조직의 룰을 익히고, 조직에 몸담은 구체적인 사람들을 알아가고, 나의 역할을 파악하고 원리원칙과 그에 기반한 유두리를 익혀가는 일. 그 가운데 나로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은 조직의 민낯을 보는 일이다. 타인의 감정의 민낯을 보는 일은 내게는 자주 '폭력'으로 다가온다. 폭력(暴力,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은 무엇인가. 비단 물리적인 힘이 개입해야 폭력일까.
군 생활을 시작하며 선배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겼다. 상욕(쌍욕)을 듣고, 작성한 문서들이 팽개침을 당해 날아간 경험들. 물론 그것들은 구체적인 나의 이야기가 아니며, 앞으로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 '폭력'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일정 부분 나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가 맞다. 업무는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며, 멈추거나 미룰 수 없는 일(병력관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수시로 내려오는 지시사항과 그것을 미처 처리하기 전에 내려오는 추가 지시사항. 어떤 분위기에서 나온 날 선 행동일지 잘 알고있다. 폭력은 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조직에서 우리 모두는 날카로운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기 딱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
타인의 민낯이 궁금하지 않다. 멀쩡한 얼굴 아래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보고 싶지 않다. 온전한 사람은 없다. 멀쩡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 모두 부족함이 있다. 각자의 그릇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의 아름답지 못함을 타인에게 고스란히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만큼 감추고 얼마만큼 내 보일지 정도의 차이일 뿐. 문제는 그것을 숨길 시간과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결국 타인의 아름답지 못한(사실 부정할지언정 그 모습에 아름답다는 표현은 아깝다.) 모습들을 보고, 나의 숨기고 싶은 모습들을 노출한다. 우리는 서로를 자꾸만 들키게 되고, 누군가의 민낯을 보며 심리적인 폭력을 경험한다. 그 화살이 당장은 나를 겨누지 않을지라도. 어쩌면 폭력의 끝은 혐오에 닿아있는 것 아닐까? 폭력의 순간 나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외면하고 싶다. 그 대가로 때로는 필요한 배움을 놓친다. 사람에 질리고 상황에 질려 피하고 선을 그었던 일들. 그로 인해 비롯된 무지(無知)는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시킨다.
놓쳤던 배움의 핑계가 모두 폭력은 아닐 것이다. 이 조직은 권력관계가 반영된 '계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한 이 조직에서 장교란 애초에 조직의 밑바닥이 아닌, 조직 구성원 대비 높은 위치에서 시작되는 계급이다. 덕분에 배제되고 잡을 수 없던 배움들. 장교님들은 이런 거 모르셔도 된다고, 저희에게 맡기시라는 일부 사람들의 말들. 말하는 이의 의도야 어떻든 간에 더 묻지 못하고 물러났던 배움들. 탄약 소대장의 기본 업무인 탄약 관리와 소대원 관리 외에도 알아야 할 부대 운영과 각종 작업들(임시막사 제작, 야외 교육장 설치 작업 등)에서 배제된 시간들. 더구나 2소대장님(나, 장교, 여자)께서는 이런 험한 일 안 하셔도 된다는 차별과 배려 사이에서 놓쳤을 배움을 끝내 잡지 않았던 소극적 의지와의 상호작용까지 합세해 나는 자꾸만 뒤로 처졌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채 시간이 흘렀다. 물론 소극적 배움을 이어가기도 했다. 천막 치는 장면을 지켜보며 저것을 용마루(건축물의 지붕 중앙에 있는 주된 마루)라 하는구나, 저 순서로 설치하는구나 같은. 하나라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뭐라도 배우려고 했던 시간들.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떤 이유로든 놓쳤던 배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은 나의 계급과 연차가 올라갈수록 마땅히 알고 있음이 전제가 될 것임을 안다. 어떻게 이 계급 이 연차가 되도록 이토록 모를까. 저만큼 무지해서 저만큼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을까 라는 잠재적 폭력을 담은 시각으로 나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안다. 결국 나는 많이 알아야 한다. 규범도, 작업도, 부대 운영도. 나를 위해서라도 나는 배워야 한다.
다시 기회가 왔다. 새로 시작하시는 분의 의욕에 함께 편승하자. 그분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알고 계시며 어떻게 조직을 운영해 가는지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마침 새 중대장님은 그런 쪽으로 탁월해 보이신다. 며칠간 지켜보시더니 우리(소대장들)를 불러 말씀하셨다. 소대장이 이렇게까지 모르면 조직에서 입지가 위험하다고.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신다. 임관 후 첫 자대에서 능수능란한 사람들 사이에서 끈기 있게 파고들며 집중적으로 작업을 배워갔던 일. 직급이 권력인 이곳에서 윗사람으로서 무엇을 모른다는 것은 스스로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기에, 기회가 충분치 않아도 눈치로 파악하고 필요하면 집요하게 캐물어서 배웠던 일들. 그 배움을 전수해 주고 싶으신 분과 배우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맞물린 지금이 좋은 기회다. 앞날은 모른다. 이 조직에 오래 남거나, 잠시 머물다 떠남과 관계없이 지금은 이 점핑의 흐름에 함께 편승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