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Oct 21. 2024

나의 예비군 훈련

여자 군인이 겪는 예비군 훈련(1)

 동원 훈련을 준비하며 한동안 부담을 안고 지냈다. 내가 있는 후방 부대는 예비군 훈련에 특화된 부대이고, (끔찍하게도) 한 달 내내 동원 훈련이 이어진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휴가는 허용되지 않는다. 작년 예비군 훈련 때는 '소위'라서 선배들을 보조하고 중대 병력들을 살피는 역할이었지만, 올해는 예비군 훈련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니 부담이 더 크다. 교관 업무(탄약보급)도 주어졌다. 교육 준비 사열과 연구강의는 잘 마쳤는데, 예비군을 대상으로 하는 고난도의 실제 강의가 남아있다. 출근길에 이틀 치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세면도구, 선크림, 화장품, 양말... 취침용 트레이닝 복. 이틀 뒤면 1차 동원 훈련을 마치고 잠시나마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오겠지. 가방 무게만큼의 부담감의 크기를 안고 숨을 고르고 숙소를 나선다.

 훈련 시작 전 간부 회의 간 중대장님의 당부가 이어진다. 잘 인솔하고, 화내지 말고, 집합 시간을 준수하고, 복장을 잘 살필 것이며, 동원 병력들이 지나치게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퇴소시킬 수 있고... 그러니 부디 화내지 말며... 더 긴장된다. 조교들 교육을 마친 뒤 예비군 병력을 맞으러 이동한다.  

 위병소 앞에 대기하고 있는 예비군 참석 대상자들.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이해된다. 나 같아도 싫을 것 같다. 입소하는 입장과 맞이하는 입장 모두 부담감의 크기는 비슷하겠지. 어쩌면 이쪽의 부담이 더 클 수도 있고. 이번 차수 입소 대상자는 400여 명. 우리 중대가 담당해야 할 인원만 백여 명이니 중대원보다 많은 인원이다. 입소자 한 명 한 명 신분증과 얼굴을 확인해 입소 처리를 하고 조교들을 붙여 중대로 올려 보낸다. 힐끗힐끗 나를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 훈련을 준비하던 마음과는 다른 의미의 불편함이 생기고 있어, 전투모를 더욱 눌러쓴다.  

 모든 입소 처리를 완료하고, 점심을 먹은 뒤 본격 훈련이 시작된다. 예상은 했지만, 집합부터 난관이다. 조교들은 집합 시간 준수를 위해 일찍부터 안간힘을 써서 교육생들을 집합장소로 데리고 나온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규범에 잘 따르는 현역과 달리 예비군(전투복 입은 민간인)을 통솔하는 일은 난도가 높다. 규칙에 반하려는 한 명 한 명의 기운이 뭉쳐 다수가 된 그들이 가진 부정적 기운은 세다. 그것을 뚫고 계획대로 이끌어가려면, 훈련의 절반은 인솔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소 시 복장을 점검했지만, 복장은 어느덧 제각각이 되어있다. (살이 쪄서) 앞섬이 잠겨지지 않는 전투복, 전투복 안으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사복. 방탄모 미 착용은 예사고, 복장을 확인할 동안 한쪽에서는 바닥에 앉아있어 대형은 수시로 흐트러지고 있다. 총체적 난관 속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베테랑 간부들은 능숙하게 복장과 대형을 바로잡아 준다. 간신히 대형을 갖춰 교육장으로 이동한다. 집합 시간은 이미 지났다.

 예비군들의 부류를 살펴본다. 극도로 드물지만 열의를 가지고 훈련과 교육에 임하는 부류. 구원이 되는 그 부류는 간부 출신이 많고, 드물게 일반 출신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동원훈련 마지막 날 표창 대상자로 선정된다. 가장 보편적인 부류는 매사 심드렁한 부류. 퇴소할 만행은 저지르지 않지만, 전혀 적극적이지도 않다. 교육시간에도 차분하고, 졸거나 주무시는 정도라 교육에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 통솔(핸드폰 반납, 집합시간 준수 등)에도 잘 따르는 편이라 이 정도 분들만 계셔도 할만하다. 하지만 어디나 힘들게 하시는 분들이 있듯, 마지막 부류는 반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 적극적으로 훈련에 훼방(?)을 놓는 부류이다. 자주 꼬투리를 잡거나 삐딱하게 응수하고, 교육시간에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거나 교육과 관계없는 질문을 던지거나 물고 늘어지는 분들. 실시간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 이 경우 당황할 수 있다. 끝으로는 나에게만 존재하는 부류. 나를 (불필요한) 관심의 타깃으로 삼는 부류. 일부 인원에게 20대 여자 간부는 어떤 의미든 타깃이 되기 쉬운 대상이기에, 가급적 피하고 싶은 부류이다.

 강당에서 입소 후 첫 교육이 시작된다. '교육'이라는 행위와 내용은 거들뿐 주무시는 분들을 깨우고, 과도한 잡담을 자제시키는 등 외관상이나마 교육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초점을 맞춘다. 다음은 사격이다. 사격은 교육보다 난이도가 많이 높다. 이동 중 머리가 아프다며 훈련에 소극적이신 분이 생기셨고, 덕분에 함께 머리가 아파진다. 무리하게 이끌 수 없기에 조교를 한 명 붙여 그분의 훈련은 참관 위주로 대체한다. 평소에도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사격이지만 예비군들을 대상으로 하자 긴장감이 더해간다. 쉼 없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정작 과장님 통제하에 창장님까지 오셔서 감독하시며 사격의 전 과정을 함께해 긴 과정을 사고 없이 마친다.

 반나절이 이렇게 길었던가? 저녁 먹기 전까지 잠깐의 휴식이다. 예비군들을 생활관에 쉬게 두고, 조교들에게 용무가 있어 생활관으로 이동하는데 "소대장님" 소리가 들린다. 분대장이다. 왠지 신나 보인다. 아까 머리 아프다고 했던 분이 소대장님 좋아한다며. ㅡㅡ; 그래서 신난 거니? 훈련 전에 혼냈더니 의기소침해 있던 아이가 덕분에 풀린 건 다행이지만, 용무가 있어 예비군들이 있는 숙소에 가는 중이었는데 가기 싫어진다. 숙소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환호성이 들린다. 음... 단체로 나 놀리는 거죠? 반응할 필요를 못 느껴 최대한 무미건조하고 빠르게 용무를 마치고 행정반으로 돌아오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전투모가 조금이나마 심리적인 방어막이 되어 다행이다.

 군인으로 지내다 보며 종종 본연의 '나'를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이 그렇다. 만약 이것이 나 개인의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생각할 수 있다. 옆에서 같이 환호로 호응해 준다? 민망할 수 있지만,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다 보니 생각이 다르다. 겹겹이 쌓인 오늘부터 따져보는 것이다. 통제 고난도의 예비군훈련임을 감안해도 반나절을 겪으며 혹시 이들은 유독 내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 건 아닌가? 왜 무례해 보이지? 말투가 왜 이래? 하며 훈련을 지속하며 점점 날이 선다. 그것들을 일일이 복기하며 다시 기분 나쁠 필요는 없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버무려져 결국 군인으로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다. 분대장들은 누가 자기들 소대장을 좋아하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애들 보는 곳에서 나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여자 군인'의 현주소가. 물론 멀쩡하고 젠틀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전부 싸잡을 필요는 없지만 솔직히 골치가 아픈 몇몇도 있다. 더 이상 현역이 아닌 이들의 자칫 필터 없는 행동과 말투. 여러 가지 이유로 예비군 훈련에 부담이 따르지만 그중 내가 느끼는 나만의 이유들. 결국 내가 부대에서 간부 이외의 어떤 대상으로 소비될 수도 있고, 이미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다다르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상황을 곡해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본연의 나를 잃어가고,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구체적인 마음은 늘어난다. 훈련은 훈련대로, 머릿속은 머릿속대로 복잡하다.

 휴식 끝과 동시에 잠시 이 생각은 접는다. 저녁을 먹고 야간 안보교육까지 마치니 드디어 밤이다. 다행히도 예비군도 우리도 점점 포기하는 부분들이 생겨나 야간교육은 비교적 수월했다. 그럼에도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시간 단위로 예비군들과 동반으로 편성된 야간 근무가 남아 있다.

 초번 근무자로 배정되어 순찰을 돌고 있는데, 어디선가 핸드폰 불빛이 보인다. 다가가니 빠르게 사라지는 불빛. 발견한 이상 모른 체할 수 없어 손을 내밀자 거부한다. "주십시오." "안 할게요." 저 쪽 말투에는 이미 짜증이 묻어있다. 이것은 이쪽에서 짜증 날 상황 아닌가? 화내고 싶은 걸 참는다. 이런 거 발견하고 지적하는 거 나도 불편하니 입소 시 애초에 반납하던가, 들키지를 말던가(부딪침이 싫어 이런 거 애초에 못 보고 싶어 하는 나는 비겁한 부류이다). ‘규정에 따르지 않으면 퇴소 조치할 수밖에 없다’라고 해야 하나, 핸드폰 하나 제대로 못 뺏는 나는 뭐지 생각하던 찰나 핸드폰을 내민다. "퇴소 날 돌려드리겠습니다." 압수한 핸드폰을 가지고 행정반으로 돌아가며 기분은 더욱 나빠진다.

 오늘 하루가 무척 길다. 곧 근무 교대시간이다. 휴게실에 가서 눈을 붙이자. 내일과 모레를 위해. 예비군 훈련은 to Be Continued.

이전 16화 '점핑'의 흐름에 편승하고 싶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