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나는 얼마나 닮았는가
어떤 글들은 깊이 있는 내용이나 진실된 내용으로 울림을 주는 글들이 있다. 그런 글들은 문장력은 조금 떨어져도 분명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글들은 탄탄하고, 전율을 일으킬정도로 명쾌하고 예리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파고든다. (물론 이때도 글의 온도는 따뜻함을 전제로 한다.) 물론 그 능력을 둘 다 갖추면 좋겠지만,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스토리는 한계가 있으니 이때 내가 더 선호하고 갖기를 원하는 글쓰기 능력은 후자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쪽 방면의 탁월한 작가로는 이미 대작가의 반열에 오르신 은유작가와 범상치 않아 보이시는 정아은작가, 그리고 최근에 꽂혀버린 정지우 작가가 있겠다. 정지우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속에서 어떤 꿈틀거림이 일어나고 뭔가를 행동하고 싶고 마침내는 나도 이런 글 쓰고 싶다로 수렴된다. 그의 작품을 될 수 있는 대로 다 섭렵해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그의 글을 정확하게 평가해 주신 분의 문장을 옮겨본다.
"정지우의 문장은 묘하다. 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지만,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잡는 악력은 가공할 정도다."
-김성신 출판 평론가.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잡는 악력. 나도 여러 번 느꼈다. 정지우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이분의 글을 이루는 핵심이 나온다.
'내가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설령 글쓰기가 내게 현실적인 이익을 뚜렷하게 주지 않더라도, 나는 글을 써왔고 쓸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글쓰기는 나를 병들게 하거나 병든 상태에 머물게 하기보다는, 늘 내게 삶에 더 나은 지평을 열어주었고, 나를 더 건강한 순환 속에 들어서게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글 쓰는 사람들의 동료의식 혹은 먼 우정, 아니면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라는 것을 믿어왔다.(중략) 그들은 언뜻 고독해 보이고, 홀로 작은 세계를 마주하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백지가 이 세계 전체와, 특히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과 이어져있다.'
'글 쓰는 일은 그냥 두루마리를 풀어놓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흑백일지 컬러인지, 그림인지, 글인지, 평면이지 입체인지도 알 수 없는데, 글을 써나가고 보면 비로로 알게 된다.'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일일이 받아 적기에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끝도 없는 그의 문장들을 읽으며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알아간다.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는 악력. 설레는 말이다. 그 날카로운 핵심을 지닌 글을 나도 쓰고 싶다. 정지우 작가님의 글을 파고들면 감탄이 끝이 없을 것 같아 앞으로도 차차 섭렵하기로 하고 다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에 관해 말해보겠다.
다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내'가 담긴 글이다. 황보름 작가의 책 휴남동 서점은 서점이야기지만 나는 승우와 영주가 상대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강렬하게 기억된 장면은 승우가 실제 영주의 눈빛에서 영주의 글에 담긴 영주를 알아보는 장면이다.
승우는 영주의 눈빛이 왠지 익숙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승우가 영주를 만나기 전, 영주의 글에서 느껴졌던 슬픔. 밝은 영주와 다르던 슬픈 영주의 글. -황보름, 휴남동 서점
내 생각에 황보름 작가는 글에 담긴 작가의 자아를 사랑하는 분 같다. 다음과 같은 부분도 좋았다.
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을 읽으면 그 작가의 어떤 이미지가 그려져요. 예를 들면 기차 창가 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같은(중략) 그 작가가 시시덕거리며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뒷담 화하는 유의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 믿어요. (중략) 글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황보름, 휴남동 서점
지문 같은 글, 인장 같은 글. 읽었을 때 어딘가 내가 느껴지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읽으며 글을 쓴 황보름 작가의 마음과 공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제대로 가져본 적 없는 밝음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안의 침울함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나의 글에는 어떠한 내가 담길지 나는 궁금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설레는 부분이 있다. 글을 쓰는 백지 앞에서 우리는 혼자지만, 사실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 결국엔 그래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