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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2. 2022

여군 시절의 사복

나를 안 드러낼수록.

 군인 시절 부대에서 마주했던 여자들은 군인과 군무원과 특정 업종(부대식당, 종교단체 등) 종사자 및 가끔씩 방문하는 군인가족 정도였다. 남자들에 비해 극소수였던 부대 내의 여자들은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존재였기에 나 역시 못 보던 여자분이 보인다면 단박에 그의 등장을 알아챘다. 그런 부대 내에서 근무할 경우 사복은 개성을 최소화하는 편이 편했다. 사복 차림에 대한 정답은 없고 특정 차림을 강요받지는 않았지만, 지내보니 군부대의 사복은 나를 안 드러낼수록 좋은 선택지였다. 군인 시절 나는 부대에서 대부분 전투복 차림이었지만, 가끔 사복을 입고 부대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다. 휴가 복귀 직후 급한일로 호출이 있었을 때, 종교행사 시, 생활관 회식 등의 소대 활동 시, 업무로 인한 휴일 출근 등의 상황이었다. 멋모르던 초임장교 시절에는 옷은 개인의 자유라 여기고(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직의 특성상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한창 꾸미기 좋아했던 나는 평소 즐겨 입던 옷차림에 액세서리와 구두를 착용하고 부대에 들어가곤 했으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공연히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눈에 띄는 일은 업무에 대한 성과만으로 충분했다. 선배들도 부대에서 대부분 무채색 계열의 단순한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분들이 분명 꾸밀 줄 몰라 그러는 건 아니었을 거다. 이따금 동료들의 결혼식이나 외부 행사에서 마주치는 그녀들의 착장 한 모습은 예뻤으니.. 그녀들은 이미 알았던 것이다. 존재 자체로 튀는 단체 속에서는 묻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본인의 개성과 취향은 부대 밖에서 챙기고, 부대 안에서는 가장 무난한 옷차림이 현명했다.

 하지만 문제를 꼽자면 그것에 익숙해져 가는 외모였다. 나는 반전을 원했다. 부대에서는 지극히 무난한 차림이더라도, 부대 바깥에서는 예쁘고 세련된 민간인(!)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웬만한 부지런함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손톱 색깔을 일일이 바꾸고, 머리에 웨이브를 주고 메이크업에 긴 시간을 투자할 것이며 설령 그렇게 꾸민다고 해도 갈 곳도 만날 사람도 마땅치 않으니 변신에 관한 당위성이 사라졌다. 가끔씩의 휴가가 있었지만 단기간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구매하는 일이 망설여졌고, 무난함에 익숙해져 가는 외모는 점점 소위 우리가 '예쁘다'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과는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휴가기간이라도 극적인 변신을 기대했지만, 군인이 사복을 입은 느낌이었다. 겪어본 개인적인 견해로만 말하자면 군인은 외적인 미()를 추구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하지만 애초에 전투복의 용도와, 직업의 정체성은 명확하니 그 부분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손톱은 늘 짧고 깔끔해야 했다. 가끔 기분전환으로 네일을 받았지만 투명 칼라나 스킨톤에 만족해야 했고, 그 조차 지적받을 수도 있으니 무광으로 하거나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머리 색상은 본연의 색상을 유지하고 웨이브 파마는 비 허용이었다. 굳이 염색을 하겠다면 짙은 갈색 정도일 테니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고, 화장은 선크림에 기초화장만 가능했다. 내가 군 생활하던 당시의 상황이니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모르겠다. 

 남자들의 경우도 머리가 짧으니 사복을 입어도 군인의 느낌을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 군인의 느낌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나의 남자 친구도 군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부대 밖에서는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첫 부대는 창원이었기에 사람이 많은 도시 속에서 우리는 어설프지만 도시 사람들 틈에 살짝 녹아들어 갈 수 있었지만, 경기도 양주의 작은 마을에 있던 두 번째 부대에서는 마을 곳곳에서 사복을 입고 있어도 군인임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도처에 사복을 입은 군인들이 나의 눈에는 너무 잘 보였다. 아마 그들 눈에 비친 나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지만 모른척한 채, 어쩔 수 없이 공개적이 된 각자의 여가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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