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처음 읽은 전경린 작가의 소설은 '풀밭 위의 식사'였다. 상황 설정은 전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작가의 필력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글은 '필력'이라는 건조한 단어로는 표현이 안된다. 신들린 글빨이라 표현해야 할까.
전경린 작가는 감정을 그려냄에 있어서 누구보다 세밀한 촉수를 갖고 있다. 그 촉수는 이성 간의 사랑에 특화되어 있다. 그의 책을 처음 읽는 순간 바로 알았다. '사랑'에 관해 가장 잘 쓰는 작가를 꼽자면 단연 전경린 작가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조차 바라지 않는 감정의 결까지 낱낱이 파고들어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의 감정 묘사는 결코 적당히가 없다. 어설픔도 없다. 그의 섬세한 감정묘사는 소설을 위한 작위적인 설정까지 초월해 독자를 기어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영역으로 끌고 간다. 도저히 끌려가지 않을 방도가 없다.
두 번째로 그의 책을 읽으며 '사랑'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가 그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차 확신했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이 새삼 심오하게 느껴졌다. 이름은 일종의 트렁크니까. 사람들은 자기 이름 속에 경험과 기억과 꿈과 소망, 능력과 한계와 비참과 고통을 수납한다. 불행과 행복을 담고, 걸어 다니고, 밥을 먹고, 어둠 속에서 누워 잠을 자고, 깨고, 그리고 마침내는 운명을 걸어 닫고 이름 속에 영면하는 것이다.
-슬픔이 어느새 내게 가장 익숙한 감정이 되었다. 나의 바닥이자 배경, 보호색, 내 정체성이 되었다. 남모를 아가미를 가진 듯 나는 슬픔에 잠겨 숨 쉬는 법을 통달했다.
-사람을 만나면 그의 방이 궁금해졌다. 방은 한 존재의 진정한 현재이다. 꼭 거기까지가 그 자신인 것이다. 방을 보여 준다는 것은, 자기 일상을 소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후회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후회해야 마땅한 순간을 놓쳤기 때문에 하지 않을 뿐이다. 후회할 순간을 아는 사람만이 후회하는 것이다.
-이중 연인, 전경린
닮고 싶은 류의 글을 쓰는 작가를 보면 드는 감정은 부러움보다는 차라리 감사 쪽이다. 쓰고 싶은 형태의 문장들과 쓰고 싶은 류의 글체를 깨닫게 되니깐. 아직은 바람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다른 형태의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