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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4. 2022

일본 유치원 운동회와 에피소드 하나

지극히 일본스러운

 * 아이 유치원 운동회 날이다. 매일같이 운동회 연습이 계속되었기에 무엇이 준비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집에서 근거리에 위치한 유치원에서는 근 한 달간 북소리와 아이들의 구령 소리와 박수소리, 호각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드디어 운동회날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 참석자는 아이의 부모와 형제자매까지의 직계가족에 한정되었고, 미리 참석자 명단을 파악해 외부인을 위한 명찰을 집으로 보내 당일날 달고 올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규모가 큰 유치원이었기에 1,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아이의 반은 1부 순서에 편성되어 08:30 집합을 시작으로 10:00까지 계획되어 있었다. 크게 부담되는 시간은 아니었다. 운동회 체력소모에 대비해 아침을 꼭 먹고 오라는 유치원 측의 당부에 일찍부터 서둘러 아침을 먹었고, 김치는 아무래도 먹지 않는 편이 좋을듯해서 꺼내지 않았다. 유치원에 도착하고 곧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들이 입장하는데 순간 조금 울컥했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매일 울던 아이가 조금씩 일본 생활에 적응해가고, 이국땅에서 매일 운동회를 연습했을 것을 생각하니 뭉클했다. 분명 아이는 단체 생활을 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좋은 영향만을 흡수할 수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은 짧았지만 순서는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천주교재단 유치원이라 기도를 시작으로 아이들의 달리기, 부모님과 함께 춤추기, 보호자 릴레이, 아이들의 짧은 공연까지 계획되어 있어서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때로는 함께 참여하며 매 순간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하나의 축제였다.  

 10월에 접어들었기에 가을이 완연한 날씨였다. 바람이 제법 찼음에도 아이들을 반팔에 반바지 체육복만 입혀서 참여시키고, 아직 어리지만 많은 연습을 거듭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나라와 같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다른 문화의 차이가 느껴져 순간 여기는 일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일본 도쿄에서 1년간 지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유학생의 신분으로 한인타운에 거주했고, 어학교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미세(店, 가게)를 오가며 한국인들과 함께 일본 속 작은 한국에서 지냈다. 당시의 삶은 일본 장기 여행객의 삶에 가까웠고, 나의 시각에서 일본의 겉모습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지금은 아이로 인해 일본 현지인의 삶에 들어갈 기회가 생기니 그때 얕게 경험한 일본을 이번에는 깊이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이렇게 직. 간접적으로 그들의 삶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지내는 나의 성실한 하루하루가 쌓여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아이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운동회 프로그램
달리기. 4명씩 한조를 이루어 뛴다.
Balloon 공연

* 두 번째 에피소드는 문화적 이질감을 살짝 느꼈던 경험이다.

 유치원에 등원할 때는 매일 그날의 마실물을 준비해서 등원한다. 평소에는 작은 물통을 들려 보냈지만, 날이 더워지고 체육대회 준비가 한창이라 한동안 큰 물통을 준비해서 보냈다. 그러다가 운동회도 끝나고 날도 서늘해져서 더 이상 물이 많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 여겨 다시 작은 물통을 들려 보냈다. 하지만 낮에는 덥고 체육활동을 하다 보니 물이 많이 필요해서 하루는 물이 부족했나 보다. 하원하고 아이와 집에 돌아오는데 아이가 가방에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물통을 꺼내며 오늘 물이 부족해서 선생님이 편의점에서 사다 주셔서 마셨다고 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는 일부러 물을 사 오셔야 했던 선생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너무 감사하기도 해서 어떻게 인사드려야 하며 물값은 어떻게 여쭤봐야 실례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가방정리를 위해 아이의 가방을 열며 그것은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임을 알았다. 가방에 있는 알림장 앞면에 영수증과 발생 내역이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다. 지극히도. 그런데 무언가 어느 한 부분이 마음 한구석을 눌렀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나에게 익숙한 문화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익숙한 시나리오의 모습은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의도치 않게 신세를 지게 된 분께 조심스럽게 물값을 잘 전달해드리는 것이었다면, 물값을 지불한 결과는 같을지라도 상호 간의 감정의 교류가 배제된 부분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의 온도는 차가움 쪽에 가까웠을 것이다. 봉투를 하나 준비해 짤막하게 감사하다는 메모를 적고 물값을 준비해서 넣었다. 거스름돈을 돌려주실 소요가 발생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 돈은 정확하게 맞춰서 준비했다. 하나의 단적인 예지만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지내며 이들의 문화의 겉모습은 따라가도 본질까지는 내면화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아이 하원 시간이 되자, 나의 살짝 메마른 결론에 대한 약간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말로 인사를 써서 보내주신 성의까지 보인 답장에 온기가 느껴졌다. 비록 방법은 다를지라도 마음이 가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앞으로도 지내면서 이런저런 문화의 차이를 느낄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럴  다름 가운데에도 본질을 기억하며 지혜롭게 대처해가고자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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