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알 것 같은
눈여겨보던 카페가 있다. 분위기가 궁금해 가보려 했지만 번번이 브레이크 타임(14:00-18:00)이나 오픈(11:30) 전 그 앞을 지나며 기회가 닿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가려고 하지 않아 장소만 인지했다. 일 년쯤 지났을까. 약속 시간을 앞두고 얼마간 시간이 비었는데 그곳이 떠올랐고, 전화해 보니 영업 중이라고 해서 마침내 갔다.
"어서 오세요. 엇!" 뜻밖에 아는 얼굴이 있었고, 각자의 기억을 소환했다. "로.... 리(아이의 애칭)?" 저쪽이 빨랐다. "네. 맞아요."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그의 아이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아빠였다. "혼자세요?" "네. 잠깐 들렀습니다."
에스프레소를 마실까 하고 들렀지만, 에스프레소만 마시기에 살짝 야박한 느낌이 들어 비엔나커피를 주문했다.
챙겨간 책을 얼마간 읽다가 약속 시간이 되어 일어났고, 그는 비로소 아이들 학교 생활에 관한 스몰 토크와 더불어 심플하게 덧붙였다. "(기회 되시면) 남편분이랑도 오세요."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을 딱 그만큼의 무게였다. "네. 안녕히 계세요."
'영업 업무를 하는 분인가?' 첫인상이었다. 대체로 주변 사람들과 눈인사 정도만 나누는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누구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인사하던 태도, 참관 수업 등 학교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 모습, 지역 여름축제 '하카타기온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 참여까지. 우연히 마주치던 장소에서 나와 아이를 불러 인사하거나, 늘 누군가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네던 그의 적극성이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던 시간이었다.
조금, 때로는 조금 많이 자영업자가 되고 싶었다. (마음을 모두 접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가게에 오세요."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못했을 확률이 크다. 상대가 지인이라면 부담 줄까 봐. 어쩌면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나의 업장의 것들이 타인의 취향이나 기준에 못 미쳐 보일까 봐 등등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가게에 오세요."라는 말 자체를 잘 못했을지 모른다. 이따금 어떤 일을 하는 나를 상상해 보는데, '영업'이라고 불릴만한 일이 어려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영업 실적에 따라 급여가 책정된다면 기본급 언저리에 머문다던가, 판매를 해야 하는데 못해서 스스로의 비용으로 메꾼다던가 등은 겪어본 적 없지만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랬던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자부심(自負心)이라 해야 할까. 자부심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 자부심에 절대적 잣대는 없을 것인데,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일을 결정해 무엇이든 그것을 한다면 대체 어느 부분이 창피하며 어느 부분을 민망해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많이 나아졌지만 전에는 많은 것들이 자주 민망했고, 글을 쓰는 일도 그랬다. 무조건적 긍정도 지양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인색한 부분이 있었다. 네가 하는 일들은 괜찮다고, 네가 쓰는 글은 괜찮다고 그 자체로 수긍해 줘도 될 것을 자주 인색했다.
어떠한 능력치는 시간이 지나며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게를 한다면 지인들에게 기회가 되면 오라고 부담 없이 말하는 일(반대 상황이라면 나 역시 지인의 사업장에 몹시 가보고 싶을 것이므로.) 혹은 몹시 적극적 까지는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일처럼 말하자면 일련의 '영업'의 연장 선상에 있는 일들을. 사실 우리의 품위(品位,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는 자부심에서 기인할 것이므로. 자신이 자신임을 기꺼이 수긍할 때.
덕분에 오늘은 자부심에 관해 쓰고 발행한다. 약간(비록 약간을 덧붙이지만 그럼에도)의 자부심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