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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 총량의 법칙

by 수진

나만의 쓸쓸함을 처음 인지하게 해 준 것은 이모였다. 막연하게 느낌으로 감지하던 모호했던 감정에 종종 휘둘리던 나에게 이모는 문득 그 감정을 알려주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보던 이모는 알았던 것이다. 당신과 나는 비슷한 '쓸쓸함'의 결을 한가닥 지니고 있음을.

그렇구나. 쓸쓸함이 스스로에게 공식화되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고, 그것은 종종 그리고 자주 (대부분) 예측할 수 없는 타이밍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그 쓸쓸함 내지는 우울함을 가끔 긍정할 때도 있었지만 진저리 치게 싫어할 때도 많았고 무력감으로 그것을 덮기도 했다. 비교적 바람직하게 발현된다면 예민함을 살려주고 인내심을 길러주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기도 했지만... 바람직하지 않게 발현되면 우울했고 냉소적이었으며 시니컬한 말들을 내뱉거나 무기력했다. 무기력하고 무기력했다. 그것이 발현되는 형태에 얼마간 의지가 반영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후자 쪽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일부러 몸을 더 움직이거나, 그립거나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걷거나, 초콜릿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어디를 가거나, 무언가를 사거나 등등 그 상태에서 놓여나기 위한 얼마간의 시도를 해 봤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어쩌면 견뎌야 하는 감정의 시간이 온다면, 그 시간은 그 감정이 필요로 하는 시간의 할당량을 채워야 비로소 종료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필요한 것은 그 시간을 견디는 자신과의 친분 아닐까.


맑고 화사한 날이다.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반드시 화사하고 희망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쓸쓸함은 어떠한 배경과는 관계없이 찾아오므로 쓸쓸함에 관해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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