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은 의지보다도 열정보다도 가끔은 의무(義務) 아닐까. 의지와 열정이 흐려졌을 때 의무는 그럼에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장치가 되어준다.
한동안의 능동적인 날들과 얼마간의 떠들썩한 날들이 지나자 컨디션 저하와 더불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왔다. 종종 찾아오는 마음이지만, 늘 처음 맞닥뜨린 것처럼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낯섦. 할 일은 많았다. 수업이 있었고, 학교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었으며(일본은 가정 방문이 있다.) 글 마감도 있었다. 억지로라도 움직여 해치워야 했다.
일단 수업을 갔다. 수업을 앞두고 부담과 긴장이 있었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의 힘에 편승해 모든 것을 잊고 수업을 마쳤다. 심지어 10분을 초과했다. 배우려는 의지가 강력한 이와의 수업에서 나의 역할은 가르침보다는 차라리 피드백이었다. 눈을 빛내며 모두 흡수하려고 하고, 깊게 몰입하는 이 앞에서는 그 에너지에 편승해 피드백(한국어 발음 교정, 질의응답 등)을 하는 것이 어쩌면 역할의 전부였다. 네이티브라는 강력한 장점을 실감했다.
곧 학교 선생님이 오셨다. 일본학교 가정방문은 연 1회 진행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집 안까지 들어오셨지만 코로나 이후로 문을 열어두고 현관에 서서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오시는 일에 심적 부담은 조금 있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는 가정 방문에 찬성한다. 방문 간에는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밖에 궁금했던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하신 선생님은 수줍음, 진지함, 의지 같은 시작하는 이의 첫 마음이 드러나는 분 이셨다. 진심은 숨길 수 없기에 그러한 기운은 주변에 퍼지는 힘이 있었다. 그가 아이의 선생님임을 떠나 첫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성장하시면 좋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수줍은 선생님과 낯가리고 언어능력도 부족한 나 사이에는 자주 침묵이 흘렀지만. 그 에너지에 이끌려 불쑥 말씀드렸다. 처음 시작하신 교사생활을 응원드리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기세를 몰아 그날 23:59 메일을 발송하며 가까스로 마감을 마쳤다.
의무에 편승해 모든 할 일을 마쳤다.
또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끔은 의무에 의해서라도 움직인다면, 가끔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은 온기(溫氣) 아닐까. 종종 느끼지만 내가 온기를 느끼는 곳 중 하나는 일터이다. 일 자체는 차치하고 배움(언어, 문화)도 시들해지고 출근도 버거운 날 그럴 때 온기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의 일터는 온기와 아날로그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곳일지도 모른다.
나의 작은 질문도 끝까지 성실하게 답변해 주시고(인터넷 검색과 같지 않다.), 일본의 장인정신에 수긍하게 되는 '절차'를 중시하면서도, 함께 하는 연대도 놓치지 않는 곳. 가끔 학교를 일찍 마친 아이가 오면 아이도 함께 환대해 주는 곳. 언젠가 때가 되면 떠나야지 생각하면서도 그 시기를 좀 더 유예하도록 해주는 온기. 덕분에 그 온기에 기대 한고비를 넘는다.
종종 느끼지만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그렇다. 사실 사는 일중 손꼽게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데리고 사는 일일지 모른다. 지금은 배경이 타국이라 나는 그곳에 힘듦을 얹었을 뿐, 근본적으로 사는 일 자체가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데리고 또 나아간다. 때로는 의무에 힘입어. 때로는 온기에 힘입어. 때로는 의지와 열정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래서 삶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다. 나 자신만 데리고는 나아갈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 때 잠시 다른 것에 편승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또 어느 시간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