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읽고 싶었던 책들과, 나를 생각하며 준비하셨을 엄마표 먹거리, 아이를 위한 옷... 우리 가족 각자의 성향과 기호를 반영한 맞춤 선물들까지. 친정식구들의 마음이 형상화된 터질듯한 4개의 캐리어를 끌고 조카들과 함께 언니가 왔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대가 없이) 즐거움으로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 것일까.
잔잔한 일상을 보내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그리움. 짙은 그리움이었다. 원래 이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사는 나는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거나 누군가 다녀가면 마음에 짙은 그리움이 인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이제는 기쁨 속에도 미세한 슬픔이 있고, 아름다움 속에도 미세한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시간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밝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조카들과 아이는 예뻤고, 너무 예뻐서 조금 슬펐다. 다음번 만났을 때 이 시절의 이 아이는 없을 것이기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일상의 루틴을 최대한 지키려 했지만 언니가 방문하며 조금 흐트러졌고, 조금은 놓았고, 짧은 여행 간 피곤함은 쌓였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 때문이었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나의 파도가 잠잠 해질 날은 언제일까 생각하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부모님은 중년의 나이에 동생들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나는 한국에 남아 결혼하고 아이 기르느라 미국에 있는 친정을 한참 만에 방문했다. 그때 우리를 맞이한 어머니의 텃밭은 마치 한국 시골을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지런한 밭고랑에 고추, 토마토, 상추 모종이 자라고, 담장에는 오이와 호박덩굴이 올라가고 있었다. -박정옥, 나도 빌리처럼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오갈 수 있는 일본에 있는 마음도 이런데) 먼 세계에 정착해 뿌리를 내리고 텃밭을 일구기까지 삶을 펼치며 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 것인가.
이곳에 살자고 온전히 이곳에 정착하자고 하는 마음이 과연 나에게 찾아올 날이 있을까. 늘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하자 생각하면서도 현재 이곳의 삶을 접고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자주 염두에 두고 사는 나로서는 어쩌면 끝내 알 수 없을 마음인지도 모른다.
일상으로 돌아가며 한동안은 다시 잊힐 마음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