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이었지만, 밤이 되자 마지막을 코앞에 둔 봄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시청 운동장에 앉아서 바람의 상쾌한 기운을 얼마간 느꼈다.
더 이상 서늘함이 섞여있지 않은 산뜻함 속에서 운동회를 앞두고 달리기 연습을 하는 남편과 아이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비로소 조금 내가 속한 세상 같았다. 일본도 어디도 아닌, 단지 지금 내가 있는 나의 세계.
"간간히 밤에 너의 글 읽고잔다."
이따금 연락이 이어지는 오랜 베프가 글을 통해 나를 만난다고 알려주었다. 생각도 못했던 이야기에 기뻤고, 뭉클했고,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잊히고 싶지 않아 글을 쓴다고. 언제나 수많은 이유로 글을 쓰지만,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잊히고 싶지 않음이었다. 나는 잊히고 싶지 않아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자아(自我)와 일상의 자아는 다르다. 조금 다르기도 하고, 많이 다르기도 하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글을 쓰는 자아는 일상 속 자아에 비해 조금은 더 진지하고 조금 더 무겁고 차분하다. 일상의 자아는... 글보다는 덜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한데(글로 표현하는 자아가 더 정제되어 그럴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 둘을 함께 노출하는 일이 나는 민망하다.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모순적이게도 그러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읽고 싶고, 때로는 글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의 글 너머가 궁금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택적으로 글을 공개하고, 글 너머가 궁금해지는 이들의 sns에 간혹 들어가 보기도 한다. (일부러 검색하지는 않는다. 프로필에 나와있을 뿐.) 인사는 좀처럼 남기지 못하지만.
시(詩)가 대단히 아름다운 장르가 생각하지만, 시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음미하기에는 마음이 바쁜 나와는 전혀 가까운 장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요즘에는 학창 시절 공부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 두 구절이 가끔 떠오른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어느 순간 모든 게 다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이곳에 있는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들 때. 신경 써서 들어야만 해석되는 이국의 언어들이 생소할 때. 대체로 달달하거나 짠 일본 음식이 아닌 나에게 오래전부터 각인되어 있는 리얼 '밥'이 생각날 때. 우리나라 사람과 닮은 부분도 있지만 어딘가 한두 구석은 미묘하게 낯설어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를 품고있는 일본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상황도 마인드도 전혀 다르고 딱 한 구절만 떠올리는 것이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떠오르는 시어는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그리고 한참이 지나 세트로 이 구절도 떠오른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뭐랄까 조금은 울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 것 같은 생각들을, 오늘은 출근 전에 기록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