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요즘
장마의 초입, 날씨는 완벽했다. 덥지도 않고, 비는 안 오지만 햇볕도 없어 야외활동에 적합한 날씨.
이곳에서 내가 누리는 혜택 중 하나는 근거리에서 직접 일본 문화를 체험하는 일이리라. 어느덧 일본 초등학교에서 두 번째 맞이하는 운동회가 되었다.
옷을 골랐다. 간간히 학교 행사(참관수업, 간담회, 면담 등)에 참여해 보니 졸업식과 입학식을 제외하고 특별히 드레스 코드는 없었지만 베스트는 무난한 계열이었다.
운동회는 한번 겪은 뒤라 경험치가 쌓여 올해는 일찍이 미니 텐트랑 아이스커피를 준비했다. 행사 안내문에서 보호자 텐트 구역을 미리 지정해 주지만, 첫 운동회 때 텐트는 과한듯해 그냥 갔다가 앉을 곳도 없고 햇볕도 강해 결국 텐트를 다시 가져갔기 때문이다.
행사 시간은 08:45-12:30. 코로나 전에는 도시락을 준비해 하루 종일 운동회를 했지만 이제는 (다행히) 반나절만 진행된다고 한다.
시간 맞춰 도착한 뒤 곧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종종 이곳에서 과거 어느 시절에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운동회도 그렇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하고, 이어지는 교가제창과 교장선생님의 개회사. 백(白) 팀과 홍(紅) 팀으로 나뉘어 경기에 임하는 아이들. 운동장 너머 곳곳에 보이는 구경 나오신 동네 어르신들까지. 구체적 경험은 없어도 막연한 기시감과 더불어 순박한 어르신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경주, 릴레이, 학년별 단체 무용, 콩주머니 던지기를 연상시키는 테니스공 넣기 게임... 학부모가 된 후 운동회에 참여하던 학창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이는 모습 이면의 것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학부모들의 애정이, 그리고 선생님들의 노고가.(개고생이;)
특히 6학년들의 순서가 진행될 동안 중학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운동회에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격려 부탁한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감정 이입해 울컥할 뻔했다. 당시 흐르던 잔잔한 배경 음악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어느덧 나도 보이는 모습 이면의 시간들을 마음으로 이해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렇게 올해의 운동회를 마치고, 행사 현장이 정리되는 것을 지켜보고 남편과 아이와 점심을 먹으러 가려는데 불쑥 짜장면이 떠올랐다. 좋아하지도 않는 그 음식이. 아마 오래전 우리나라는 졸업식 입학식 같은 특별한 날 짜장면을 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곳에서도 한국식 짜장면은 좀처럼 만날 수 없기에.
며칠째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도 장마가 있다. 덕분에 비가 오는 날들을 지나며 날씨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고 있다. '비' 자체는 좋지만, 조금은 가라앉고 조금은 차분해지고 얼마간은 슬퍼지는 그런 마음을.
그리고 이어지는 앞날에 관한 고민들. 그런데 창을 통해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날 이 순간이 그리워지는 때가 오겠다는 생각이. 분명한 것은, 계속 이 순간에 머물 것은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증발할 것 같은 요즘의 마음들을 오늘은 한번 기록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