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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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슬슬 "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잘 부탁드립니다.)" 인사하며 일어나면 될까? 상담 시작한 지 5분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일어나면 무성의해 보이는 것 아닐까?... 근데 할 말도 질문도 다 한 것 같은데... '안녕히 가세요.'라고는 안 하실 테니 알아서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
마침내 할 말을 찾으신 선생님이 입을 여신다. 가까스로 대화는 이어졌고, 침묵의 시간은 빠르게 다시 찾아왔다. "......" 어떡하지? 적막의 무게에 뭐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할 즈음 문이 열리고 부담임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안녕하세요^^ 어디까지 이야기하셨죠?" 환대가 담긴 밝은 목소리. 수십 년간의 교사생활에서 빚어진 연륜과 눈빛에서 묻어나는 총기. 비로소 담임 선생님과 나는 적막의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현재 아이가 재학 중인 일본 초등학교는 연 1회 교사와 학부모 단독의 개인간담회(懇談会) 시간이 있다.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성적, 교우관계, 태도 등)에 관해 듣고 질의응답으로 이어지는 시간으로 인당 15분씩 할애되며,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대화가 오가는 꽤 유익한 시간이다. 문제라면 나의 경우 선생님에 의해 그 시간의 활용도가 결정된다는 점일까. 연륜 있는 달변의 선생님을 만나면 자연스러운 대화 속으로 들어가지만, 수줍음이 많으신 선생님을 만나면 함께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럴 때 능숙한 대화의 스킬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겠지만, 언어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그럴 능력이 없는 나는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은 경청과 예의를 갖추는 것뿐.
부담임 선생님의 등장으로 간담회는 살아났다. 달변(達辯, 능숙하여 막힘이 없는 말, 말을 능숙하고 막힘이 없이 잘하는 사람). 그분은 달변이셨다. 이미 오간 이야기들은 구체성이 더해졌고, 자리(간담회)의 특성을 명확히 아셨기에 상대에게 질문과 이야기들을 이끌어 냈다. 이어지는 적절한 피드백과 답변, '부담임'의 포지션을 넘지 않는 현명함까지. 덕분에 간담회는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아이의 학급은 담임과 부담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연륜 있는 부담임 선생님과 햇병아리 담임 선생님. 지켜본 바 두 분은 케미가 좋았다. 현명함과 달변의 언어를 지닌 부담임 선생님과, 내성적이지만 진솔함의 언어를 지닌 담임 선생님. 대학 졸업 후 처음 교사로 부임한 젊은 남자 선생님은 미숙함과 어색함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도 말수가 적을 것이었다.(첫 상담 때는 나를 관통해 뒷 벽을 보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진중했고, 학생과 업무에 진심이셨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연출해서는 낼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여건상 언어를 통해 상대와 온전히 교감할 수 없는 환경에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많은 것을 행동으로 말한다는 것을.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은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것을. 구체적인 언어를 통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나를 설명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태도와 행동을 통해 나는 읽히고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얄팍한 수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 간담회를 끝으로 1학기의 과제를 마쳤다. 이어지는 방학숙제와 아이와의 시간들. 학부모의 일은 지속되고, 나는 그렇게 자란다.
덧. 그럼에도 다음번에 선생님을 만나면 조금 덜 어색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