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물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글의 장르 중 '에세이(essay)'를 사랑한다. 에세이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국어사전 참조)로 정제 과정을 거쳤지만 비교적 생생하게 작가의 목소리와 생각,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르이다. 그래서 좋아한다. 사는 일에 서툴렀던 나는 자주 막막했고 자주 난관에 부딪쳤다. 예민한 성격은 복잡한 상황과 무거워진 마음을 잘 견디지 못했다. 마음을 풀고 기댈 곳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만나 풀기에는 인간관계의 폭이 좁았고, 무언가를 해서 마음을 달래기에는 스스로를 너무 몰랐다. 그래서 찾아낸 해결책은 책이었다.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초라하게 느껴지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는 일이 막막할 때... 더는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책을 읽었고 그때 집어든 책은 대부분 에세이였다.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 나는 이렇게 약하고, 자신 없고, 우울하고, 방황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는데 누군가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힘을 내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 누군가의 에너지를 나눠 받고 그 힘으로 나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고 싶었다.
누군가 쓴 에세이에는 한 사람의 거대한 우주가 담겨있었다. 그의 글은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라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미처 몰랐던 시각으로 나의 삶을 새롭게 볼 수 있었고, 복잡한 내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힌트를 주는 책도 있었다. 때로는 저자의 독특한 발상에 사로잡혀 그의 마음의 우물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지는 책도 있었고, 어떤 책은 저자의 밝은 에너지가 전달되어 살아갈 힘을 주기도 했다. 어떤 책에서는 용기를 얻었다. 책을 읽을 때 마주하는 누군가의 광활한 우주와 그 만의 고유함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 좋았다. 어떠한 고유함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동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읽다 보면 잠시 현재의 나를 잊을 수 있었고, 나의 불안정함과 불완전함 때문에 도저히 읽는 일에서 멀어질 수 없었다
작가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용기와 끈기가 부러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 안의 깊고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가 기어이 그것을 끄집어내고, 그 고유함을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그 길고 긴 인내의 과정을 이겨낸 끈기와 용기가 부러웠다. 그 과정이 너무 험난해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을 테고, 자신이 품고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고백하기까지의 큰 용기를 생각하자 책 한 권에 담긴 작가의 세계가 경이롭게 여겨졌다.
책을 통해 누군가 펼쳐놓은 저마다의 우주를 보며 문득 아직 세상에 없는 빛깔의 글들이 궁금해졌다. 누군가 써 내려갈 그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담긴 글이 보고 싶었다. 내 주변의 구체적 실체를 가진 A, B, C, D....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 글을 쓴다면 과연 어떠한 글을 쓸지 그 안에 어떠한 세계와 어떠한 고유함이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알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상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빛깔이 담긴 글들이 그에게서 나올 것을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고, 애정이 큰 대상일수록 호기심의 강도도 커졌다.
그리고 아직 쓰지 않은 나의 글이 궁금해졌다. 내 마음속 깊고 깊은 우물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지, 나는 그것으로 어떠한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글감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그래서 또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 안 깊고 깊은 우물에 있는 나도 아직 모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에 담긴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꺼내고 싶어졌다. 찬찬히 직접 그것을 확인하고 끄집어내 나의 언어로 풀어보고 싶었다.
"(글쓰기는)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이성복 시인, 강연 중에서)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은유 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용기가 생기는 글이다. 설령 내 안의 우물에 담긴 것들이 아름답지 않고, 근사하지 않고, 내게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그것을 미루고 유예하고 모른채하고 지내기에는 시간의 유한함이 확연하고 나의 삶이 품고 있는 세계들이 너무 소중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