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우리의 찬란한 시간들

일상을 유지하는 일

by 수진

냉장고가 비었다. 가까운 집 앞 마트에 가려다 고추장등의 한국 식재료와 신선한 채소와 과일도 필요해 자전거를 타고 조금 먼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일본에 온 뒤 비로소 독립된 결혼생활이 시작된 기분이다. 도움의 손길도, 도와줄 사람도, 편리한 서비스 기반도 없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것들을 스스로 하며, 이제야 결혼생활을 현실로 안착시키고 있다. 8년간의 결혼생활 간 가사의 존재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작았거나 때로 부재했다. 결혼초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고 한국의 편리한 배달문화와 외식문화 덕에 청소, 빨래만 남편과 분담하고 집안일에 특별히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다정하고 부지런한 친정엄마는 아침에 현관 앞에 방금 만든 집밥을 귀찮을 정도로 자주 놓아두셨고, 덕분에 요리는 이벤트성으로 해도 괜찮았다. 한창 육아하고 재취업하던 시기는 아이 돌봄 선생님과 친정엄마에게 살림의 많은 부분을 외주화 했고, 일본행이 결정된 뒤 집을 정리하고 비자를 기다리던 동안 잠시 친정에서 지내던 시간은 코로나로 비자 발급이 지연되어 예정보다 길어졌다. 결국 남편 먼저 비자를 받아 남편은 일본에서, 아이와 나는 친정에서 이산가족생활을 하며 때를 기다렸고 그러다 보니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의 살림은 나의 직장생활과 너그러운 엄마 덕분에 생활비 송금으로 대체되었다;; 비자 발급이 언제 재개될지 몰라 집을 다시 구하기도 애매했다. 때가 되어 아이와 마침내 일본에 왔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셋이 살며 결혼 후 우리만의 힘으로 꾸리는 삶이 시작되었다.

친정에서 지냈던 시간 가장 그리웠던 것은 일상이었다. 가사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웠던 혜택은 있었으나, '나의 공간'의 부재는 괴로웠다. 결혼 전에 나의 집이었던 곳에 결혼하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들어가니 내 집같이 편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한집에서 지내던 부모님과 각자의 삶에 익숙 해 버린 뒤 다시 장시간 함께 있으려니 틈틈이 부딪쳤고, 결혼한 친정언니가 조카들을 데리고 수시로 방문하는 일이 내게는 반가움보다 (내 집도 아니면서) 공간의 침범으로 여겨져 불편함이 앞섰다. 나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며 지내며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일상'과 그 일상을 누릴 '공간'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일본에 온 뒤 비로소 내가 온전히 주관할 수 있는 '나의 공간'과 '일상'이 생겨서 좋았다. 바라던 대로 잔잔한 일상을 살다 보니 그간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살림'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행위를 '살림'이라 표현하는 것보다는 '일상을 유지하는 일'로 표현하는 게 적합할듯하다. '살림'의 사전상 의미를 찾아보니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을 뜻한다고 한다.)

일상을 유지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샤워하고 옷을 입고 외출하는 간단한 일 뒤에도 목욕탕 청소와 옷과 수건 세탁, 목욕용품 및 세탁용품 구매 및 비치 등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침에 아이 밥을 먹이고 유치원을 보내는 일에도 이부자리 정리와 집안 먼지제거, 장 보는 일과 조리까지 많은 보이지 않는 많은 일들을 필요로 했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 쓰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고 거기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상당했다. 그 번거로움을 오랫동안 잊고 지내며 생활비 송금으로 가볍게 해결했던 나는 엄마의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많이 빼앗았던 것일까... 정성과 노력에 비할 바 못 되는 송금액에도 매번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던 엄마의 마음의 크기는 가늠하기도 부끄럽다.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갔다. 필요한 물건들과, 식재료와 각각의 기호에 맞는 간식까지 사서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가는 길, 이렇게 소비되는 나의 (피 같은) 시간과 이곳에 없는 서비스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이곳에 물건 구독 서비스와, 인터넷 장보기, 마트배송 서비스 같은 것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각각의 서비스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페달을 밟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떠올랐다.

타국에서 2년간 혼자 일을 하며 보냈을 남편의 시간, 수 없이 많은 장을 보고 물건을 사서 나르고 음식을 만드셨을 엄마의 시간, 매일 일터에 출근하셨을 아빠의 시간... 그들은 내 이기적인 기준으로, 다른 누군가를 위해 소비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시간의 희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용된 그들의 시간은 내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기적이고 부족한 나는 종종 불평이 나오지만 조금씩 깨달아 간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시간들은 결코 소비되어 없어지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 시간들은 나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재 탄생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 시간 또한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것을.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청결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마트에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며 냉장고에 신랑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채워 넣고, 아이가 즐겨 먹는 바나나와 간식도 비워진 자리에 채워두고, 내가 먹을 견과류와 과일도 비치해 두었다. 모두 각자의 여유시간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이제 오늘의 급한일을 끝냈으니 아이 하원 전까지 글을 써야겠다. 일상의 아름다움에 울컥해지는 글을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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