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지닌 빛깔
꿈의 부재(不在)는 나를 괴롭게 했다. 마음에 담긴 열정을 어딘가 쏟고 싶은데 그곳이 어딘지 모를 때의 막막함과 암담함은 몸집이 커서 열정까지 약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삶의 모습은 때로 그러한 괴로움을 가중시켰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 꿈에 온전히 사로잡혀 지내는 사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오래전 내게 '열정'에 관해 열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던 분을 기억한다. 그분의 말씀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좋을 만큼 가슴 뛰는 일을 찾아, 그 열정에 완전히 사로잡혀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말씀이 긴 시간 잊히지 않았다. 끈기가 부족했던 것일까, 마음이 메말렀던 것일까. 나의 삶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들과 건조함과 냉소의 마음밭에 많은 순간 머물렀고 그런 내가 안타까웠다.
전역 후 다시 시작한 일은 안정과 여유, 효율의 어디쯤에 있는 일이었고 나를 크게 괴롭히지 않았다. 일이 삶의 활력이 될 때도 있었지만 종종 매너리즘에 빠졌고 일터에서 불타는 마음의 열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열정'은 무엇이었을까? '열정'을 생각할 때 떠오른 이미지는 이러했다. 자신을 잊은 채 몰입하여 긴 시간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 마음에 품고 있는 일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그 누군가의 행위... 어쩌면 나에게 열정이란 마음의 소리를 퍼포먼스로 강렬하게 터뜨리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과연 그것이 열정의 전부라 할 수 있을까. 내 삶에 한순간이라도 무언가에 가슴이 뛰는 순간이 없었을까. 내 마음은 모든 순간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내 삶은 분명 매 순간 건조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뚜렷하고 명료한 빛깔은 아니었지만 분명 내 나름의 다채로운 빛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열정의 빛깔이 같아야만 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현되는 것만을 열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 안에도 조용했고, 어쩌면 나만 감지할 정도로 미세했을 수 있지만 분명 열정의 순간들이 있었다. 내 마음이 향했던 곳, 내가 하기를 원했던 그 무엇, 하지 않아도 되는데 원해서 자발적으로 했던 어떤 것. 그곳을 보면 그 끝에 내 열정이 있었다. 존재감이 강렬할 것이라 여겨서 때로는 알아채지 못했을 뿐 열정은 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안테나를 세우고 자신의 욕망에 반응하며 내 마음에 울림을 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의 끌림에 따라 책을 읽었을 것이고, 여행을 했을 것이고, 친구를 만났을 것이고, 외국어를 공부했을 것이고, 직업을 얻었을 것이고, 인생의 즐거움들을 찾으며 때로는 위로를 얻고, 인생의 시간들을 견뎠을 것이다. 그리고 열정 덕분에 지금도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나의 열정에 관한 모든 것에 답할 수 없고, 어쩌면 죽는 날까지 그것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내 열정이 향하는 모든 곳이 어디일지 나는 끝내 모두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일상 속에 내 마음의 열정이 향하는 곳을 한 곳이라도 더 발견하고 경험해 보는 기쁨들이 지루한 날 선물처럼 모습을 드러내겠지.
"마치 불시에 빼앗긴 것처럼 다들 말하지만 열정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손에서 놔버리는 것. 조금 더 스스로를 믿어주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임경선, 호텔이야기>
가장 사랑하는 임경선 작가의 '호텔이야기'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시간이 지난 뒤 나의 삶에서 발견된 열정들이 내게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을 가져다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