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는 삶을 소망하며
쓰는 일을 사랑한다. 쓰는 일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쓰는 일을 사랑하는 나는 읽는 일도 좋아하며 쓰는 일에 관한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누군가의 글쓰기가 궁금할 때, 쓰기가 막힐 때, 쓰고 싶으면서 쓰고 싶지 않을 때 쓰기에 관한 글을 읽곤 한다. 누군가는 어떻게 쓰는지, 무엇을 쓰는지, 글쓰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쓰기의 재능은 무엇인지, 글이 막히거나 슬럼프를 겪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등 '쓰기'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쓰고자 하는 의욕과 용기가 때로는 슬며시 때로는 뜨겁게 내게 스며든다. 그 힘으로 다시 쓸 수 있을 때가 있다.
누군가도 항상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쓰기 어려웠던 시간도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시간도 있었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쓰고야 말았던 이야기를 특히 애정한다. 누군가의 글쓰기 역시 지독한 성실함과 자신과의 싸움, 치열한 인내로 얻은 결과라는 게 내게도 위안이었다. 그것이 글쓰기가 지닌 공평한 속성이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글쓰기의 근원에 '쓰기'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쓰기는 온전히 혼자 하는 행위지만, 나 말고도 어딘가에서 그것을 사랑하고 여전히 쓰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덜 외롭고 조금 든든했다.
"에세이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어가면서 어떤 생각의 자극을 받거나 자유연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고 일어났을 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을 때도 뇌가 밤새 쉬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쓸 거리가 저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임경선 작가
"걷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듯 쓰지 않으면 글은 나오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단호하다. 글이 안 써지는 건 계속 쓰지 않아서라고." 김호연 작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난 뒤) 작가의 삶은 달라질 것이 없다. 변함없이 계속 쓸 따름이다." 김호연 작가
그렇다면 나의 쓰기의 대상은 무엇인가? 나의 쓰기의 뮤즈는 '나의 일상'이었다. '쓴다'는 행위 자체를 의식하기 이전부터 늘 무엇인가 써왔다. 혼자 틈틈이 써 내려간 일기와 베프와의 교환일기,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과 거쳐갔던 여러 형태의 SNS까지 헤아려보면 쓰는 일은 늘 나의 삶의 한 부분에 조용하지만 확고하게 자리 잡아 나를 지탱해 주었고, 기댈 어깨를 내주었다. 서툴게, 수줍게, 기쁘게, 슬프게, 아프게, 설레게 써왔던 이야기들 속에 나의 일상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쓰기와 함께 성장해 왔다.
살다 보면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다. 쓰고 싶은 열정이 뜨거운데, 무언가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아름답고 뜨거운 글을 쓰고 싶은데, 능력이 열정보다 부족하다 느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 간절함과 당위성이 부족하다 여겨질 때 안타깝고 초조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인생의 다양한 순간들을 보고 겪고 느끼며 떠오르는 감정들을 부지런히 쓰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부딪치고, 새로운 일은 겪고, 무언가를 만들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낯선 요리를 먹고, 낯선 곳에 가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들과 경험을 계속 쓰기 위해. 쓰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고 쓰는 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계속 쓰기 위해서는 나로서는 일상을 계속 생생하게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제부터 아이의 새 학기가 시작되며 나의 생활 루틴도 바뀌었다. 아이의 하원 시간을 감안하면 개인 시간을 제외한 하루 글쓰기 가용 시간은 3~4시간 정도고, 한주에는 평일에 15-20시간 정도는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은 지금 나는 쓰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쓸 수 있는 엄청나게 행복한 상황인 것이다. 계속 쓰는 삶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