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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pr 17. 2023

잊지 못할 고마움을 선물 받았다.

전역 전날의 기억.

 군 생활의 마지막에 관한 글은 쓰기 어렵다.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때때로 따뜻했던 그 시절을 내게서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듯하다. 그 시절을 지움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틈틈이 그 시절의 일을 적고 있다. '애증(愛憎)'이 아닐까 여겼던 군생활의 기억들 중 감사하게 증의 기운은 희미하다.

  전역 전날의 기억이다. 중대가 아닌 참모부에서 군 생활을 마무리했던 나는 비교적 조용한 전역이 예정되어 있었고 전역 전 특별히 챙겨야 할 직속 인원도 없었다. 그럼에도 전역 전 함께 식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휘통제실에서 함께 일했던 지통실 계원들과, 운영과에서 나를 직, 간접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던 운영과 계원들이 그들이었다. 운영과에는 좋은 아이들이 많았고, 나는 그들과 마지막으로 밥을 한 끼 먹으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대 회식과 부서회식, 전역 전 만나야 할 사람들과의 개인적 만남도 끝냈으니, 전역을 앞둔 마지막밤은 계원들과 식사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이 소속된 중대의 중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퇴근 후 함께 고깃집으로 향했다. 함께 일하던 추억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밥을 먹고 그간의 고마움을 전하며 자리를 마무리 지으려던 때 선임 아이 하나가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모두 함께 작은 마음을 모았다는 말과 함께 건넨 선물을 확인하니 얼마간의 현금!이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과 더더욱 예상치 못한 내용물에 많이 놀랐다. 본인들이 외부에 선물을 사러 갈 여건이 되지 못하고, P.X에서는 내게 선물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선물에는 그들의 마음이 생생히 들어있었다. 나를 보는 표정에 진심이 느껴져 고민했지만 어떻게 할지 난감했다. 저녁점호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어 일단 아이들을 중대로 돌려보내고 나도 숙소로 돌아왔다.  

 전역 전날밤은 바빴다. 내일이면 떠날 곳인데 아직 해야 할 짐 정리가 많았다. 숙소 이곳저곳을 확인하며 정신없이 나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1년 7개월의 시간 동안 머물던 숙소는 곧 떠나리라 마음 한편으로 선을 긋고 지냈음에도 제법 짐이 많았다. 가져갈 것들을 상자에 넣고, 버릴 것은 버리며 새벽이 훌쩍 넘은 시간 간신히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마쳤다. 나머지는 내일 전역 신고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정리하고 이제 내일을 위해 서둘러 자야지 싶은 순간 마음한구석에 있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불쑥 떠올랐다. 아이들이 준 선물이었다. 뜻밖의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선물의 의미와 그들의 고마운 진심은 넘치도록 느꼈고, 그 마음씀씀이가 이해도 되며 조금 울컥했다.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수긍이 되지 않는 일도 아니었다. 선물을 주고 싶은데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없어, 현재 여건 내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선물하는 그것은 나 역시 종종 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역시 결과만 놓고 보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돈' 혹은 '현금' 자체를 떠올려보니 자꾸 실존하지도 않을 날카로운 누군가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게 되었다. 실존하지 않고, 어쩌면 그렇게 여기 지도 않을 가상의 인물이 할 말을 상상하자 망설임은 강해졌다. 돌려주자.. 받기는 부담된다.... 무척 미안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게 최선이라 여겼고,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을 생각하자 더욱 복잡해졌다. 선임 아이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내게 그럴 시간이나 있을까... 나는 전역 신고 후에 바로 떠날 텐데.. 나의 행동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돌려주며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딘가 숨겨두고 쪽지를 남기는 방안은 어떨까. 이것저것 떠올려 봐도 모두 내키지 않았다. 그 돈으로 무언가 선물을 사서 전달해 주는 방안은 어떨까. 게 중 나은 대안 같았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았고, 그런 일을 한사코 몰래 할 내 성격을 생각하자 도저히 여력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그들의 중대장이었다. 1년 선배였던 그와 개인적 친분은 없었고,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사석에서 본 것은 회식자리 몇 번이 전부였지만 가볍지 않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전역신고를 끝으로 부대를 떠나야 하는 나는 더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전역 신고를 하고, 부대 곳곳에 인사를 다니며 그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받은 선물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못 이기는 척 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지만 나의 마음이 어떤지도 충분히 이해되니 알겠다며 나에게 다시 전달받았다... 그리고 그 일은 나의 손을 떠났다... 남은 것은 그들의 마음이 담긴 생생하고 선명한 온기뿐이었다.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 지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바라는 게 있다면 마음은 전달받았음을 그들이 알아주고 행여나 거절당했다는 오해나 일말의 상처라도 겪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 일에 연연하며 살고 싶지 않지만 그날의 선물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자주 차가워지는 내 마음이 그 온기로 예열되었으면 싶은 마음에 모처럼 그 추억을 꺼내보았다. 종종 지난 추억들로 나는 감성적이 될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은근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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