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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pr 26. 2023

머리 감기

어떤 순간에 관하여

 군인시절 순번에 따라 평일과 주말 당직근무에 편성되었다. 중위 때까지 평일 당직근무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근무 교대 후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09:00-12:00)의 휴식이 보장되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중대 간부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13:00부터 (몽롱한 정신으로) 오후 일과에 정상 투입되는 게 당시 근무 여건이었다. 

 차량으로 편도 30분 정도 소요되는 영외 숙소에 살았던 나는 근무 전에도 근무 후에도 씻으러 숙소에 다녀올 수 없었고, 더운 여름에도 부대에서 간단히 세수하는 정도에 그쳐야 했다. 평일 당직에 편성된 날이면 평소처럼 아침 07:30 전후로 출근해 17:00에 그날의 일과를 마친 후 당직 근무에 투입되어, 다음날 출근한 중대간부들과 함께 상황회의를 끝으로 09:00부터 근무 취침 후 13:00부터 오후 일과에 투입해 20:00 전후에 퇴근하는 강행군이 기다렸다. 칼퇴는 거의 불가했으므로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 출근길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지만, 주간 당직이 있는 날 여벌의 양말과 세면도구를 챙겨 출근하는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다. 이제 36시간 뒤에나 녹초가 되어 숙소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남자 간부들은 조금 여건이 나았다. 그들은 원하면 씻을 수 있었다. 오후 업무를 조금 일찍 마치고 부대 내 간부 목욕탕이나, 영내 거주 간부는 본인의 boq에서 씻고 근무에 투입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현장업무를 마치고 바로 중대로 복귀해 당직 완장을 차야했으므로 더운 여름에는 아무리 에어컨이 있는 행정반에서 근무해도 좀처럼 상쾌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다음날 저녁까지 씻지 못하는 일은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늘 수면부족이었던 그 시절의 나는 근무를 서기보다는 견디며 그 자리를 지키다 아침이 되면 중대 간부에게 인수인계 후 휴게실로 직행해 쓰러지듯 누워 자다가, 후임 소대장들이 밥 먹자고 연락하기 10분 전쯤 알람을 맞춰놓고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오후를 준비했다. 부대 내 여자 샤워실을 구비할 여건이 못되어 대신 화장실에 순간온수기를 설치해 세면대에서 온수는 나왔지만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뿐이었다. 

 머리라도 감고 싶을 때 가끔 이용하던 곳은 부대 내 간부 이발소였다. 그곳에는 샤워기가 달린 입식 세면대가 있었다. 이발병에게 양해를 구해 잠시 내보내고, 문을 잠그고 머리를 감았다. 간혹 노크소리가 들릴까 신경을 써야 했지만, 드라이어까지 이용할 수 있어서 머리를 감고 나면 한결 개운했다. 다른 간부들의 이용시간도 고려해야 했고, 이발병의 내부 기기관리 및 청소등의 일을 고려하면 미안해서 매번 이용하지 않았으나 아쉬운 대로 괜찮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 평일 당직근무 순번이었던 나와 함께 당직근무를 섰던 타 중대 근무자는 참모부 소속 여군 부사관이었다. 나이도 군 경력도 나보다 길었던 그는 성격이 털털했고, 우리는 가끔 외부에서 식사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 여군 휴게실에서 함께 휴식을 취한 뒤, 그의 제안에 따라 머리를 감으러 갔다. 그날 간부 이발소에는 부대 남자 간부들이 차를 마시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 당연하게 나중에 올 것을 기약하며 나가려는데 그녀는 개의치 않고 머리를 감는 세면대 쪽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순간 멈칫했다. 성격의 차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머리를 감는 일이 불편했다. 직관적 망설임이었지만 아마 안면만 있는 어색한 사람들 앞에서 거품 범벅으로 고개를 숙이고 공개적으로 머리를 감기가 다소 민망하고 내키지 않아서 그랬으리라. 그것은 뭐랄까. 지나치게 사적인 일이라 여겨져서 그랬을까.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비방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시 이발소에 있던 남자 간부 중 한 사람은 여자 후배들에게 평판이 매우 좋지 않았고, 그래서 그 자리가 더욱 달갑지 않았다. (지금 자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훗날 그 사람은 결국 스스로의 불미스러운 일로 징계 처분 되었다. 언젠가는 글로 쓸지도 모르겠다.) 

 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내게 꺼려졌던 그 일은 누군가에겐 별일이 아닐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늘 그곳의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빠르게 이용했던 나로서는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혼자 나가면 남는 사람의 입장도 이상할 것 같아 짐짓 아무렇지 않으려 노력하며 함께 머리를 감았다. 생각이 복잡해 머릿속은 개운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한번 마음에 걸리면 과도하게 연연하는 나는 그 일을 거듭 생각했다. 좋아하지 않는 '유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군가 나의 행동에서 '유난'이라는 단어를 연상할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문을 잠그고 혼자 머리를 감는 내가 과해 보이지 않을까. 뒤에서 수근 대는 건 아닐까? 아무렇지 않아야 하거나 최소 그러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성격도 못 되면서 그런 척 행동하는 게 이 조직에서 잘 묻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이도 저도 곤란하니 이제 간부이발소를 이용하지 않아야 할까.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얼마뒤 부대 내 신 boq가 완공되어 나는 위병소 앞 숙소에 살게 되었고, 당직근무 체제도 근무 교대 후 바로 퇴근하도록 복지가 개선되어 그 문제는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음 부대도 숙소가 부대에서 가까워, 며칠씩 지속되는 훈련이 이어지면 부대장님의 배려로 잠시 씻으러 숙소에 다녀올 수 있었으므로 더 이상 그 고민을 할 일은 없어졌다. 

군생활에 관한 글을 쓸 때는 믹스커피가 어울린다. 

 가끔 나는 군생활 간 헤매던 문제에 관한 답을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 보곤 한다. 일부러 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일들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최근에는 '머리 감기'의 일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른 뒤 당시 군생활 간 헤매던 문제의 답을 모두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감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나는 찾았다.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뿐이었다. 그것이 내게는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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