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지트

나와 보내는 시간

by 수진

일본으로 이사 온 뒤 아쉬운 것은 카페였다. 곳곳에 많은 카페가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카페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는 카페거리도 있고 개성 있는 카페들도 있지만 내가 사는 한적한 지역은 카페가 많이 없었고, 빠르게 이동가능한 근거리에는 다방이라 이름할만한 킷사텐(喫茶店, 커피나 차 등 음료나 가벼운 식사를 제공하는 일본식 찻집)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없어졌다.

군 생활즈음부터 갖게 된 카페에서 차 마시며 보내는 시간은 나를 위해 내주는 시간이었다. 조용한 그곳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무언가 쓰거나, 계획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고,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군생활과 동떨어져 조용히 보내는 그 시간은 대체로 평온했다. 집에 있기 싫고, 외로운 데 갈 곳은 없고 만날 사람이 없거나 혹은 만나고 싶지 않을 때,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를 때 등의 이유로 카페를 찾았다. 혼자 쉽게 갈 수 있었고, 일행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고 식당처럼 목적달성(식사) 후 바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곳도 아니었고, 공간을 사용하는 시간을 감안해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차나 쿠키 등의 다과류를 주문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라는 존재가 있어 다행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시간은 내게 위안이었고, 그 시간 나의 마음에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전역 후에도 그 시간은 이어져 육아 중 쉼이 필요할 때, 직장생활 중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기약 없는 일본 비자를 기다리던 시간의 답답함 가운데.. 혼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 카페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오곤 했다.

일본으로 이사 온 뒤 이곳에서도 그런 장소가 필요했다. 아지트 삼을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너무 번잡해도 안 되고, 내부 인테리어와 식탁 의자 등등이 죄다 플라스틱 느낌 가득해서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 곳도 싫고,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도 안되고,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분위기도 안 내키고 등 그 취향에 맞지 않는 곳을 제하자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지금의 주 이동수단이 자전거임을 고려하면 너무 원거리에 있어서도 안 되었다. 해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혼자 있을만한 조용한 카페'에서 '카페'에 한정 짓지 않자 적당한 장소가 나타났다. 동네를 산책하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비즈니스호텔 1층에 있는 베이커리를 발견했다. 당일 만든 다양한 빵과 아침시간에 제공되는 갓 내린 드립 커피, 널따란 원목 테이블과 의자, 은은한 bgm이 있고 와이파이까지 이용할 수 있는 그곳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체인점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라 종업원들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들에게 무심해 오히려 편했고, 붐비는 시간대만 피하면 대체로 조용했다. 아침 07:30부터 시작되는 부지런한 영업시간은 현재 여건상 달리기를 비롯한 일상의 루틴들이 아침에 몰려있는 내게 적당했다. 나는 드디어 이 지역에 나만의 아지트를 찾았다.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고, 나의 아지트가 있는 이 도시에 비로소 조금씩 곁을 내줄 수 있었다.

언제나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 내면이 단단해지는 일이다. 큰일은 물론이고 작은 일에도 수차례 마음이 휘청이고 어떤 날에는 하루종일 삶에서 벌어지고 들려오는 일에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다 보면, 그 흔들림이 마음의 영역을 넘어 삶까지 침범함을 가까스로 막다 보면 단단한 마음이 얼마나 삶의 큰 기둥인지 깨닫곤 한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부러움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잘못 간 길에 대한 후회가,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인내가 필요한 일들에 대한 초조함이.. 온갖 것들이 마음에 파고들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렸고 이제도 흔들린다. 어느 정도 삶에 익숙해지고 초연해질 만큼 인생에 연륜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여겼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에 가차 없이 흔들리는 나를 보면 아직도 나를 향한 친밀감과 신뢰가 굳건해져야 함을 느낀다. 나를 흔드는 상황에 지혜롭게 맞서고 내게 맞는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내면의 단단함을 소망한다. 온갖 것들에서 마음을 지키며 살 때 때로는 나를 위로해 주고 때로는 용기를 주고, 나를 발견하게 해 줄 아지트에서 보낼 나의 시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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