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로 쓰는 세계에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다-은유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by 수진

글쓰기가 전보다 빈번해진 시간을 보내며 글쓰기와 관련된 새로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한창 글쓰기 속에서 지내던 날은 길을 가다 어떠한 일을 보거나 겪으면 주변 환경과 상황들이 마음속에서 나의 글이 되어 나오는 일도 있었다. 당장 글을 쓰지 않더라도 나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문득문득 마음속으로 나의 글로 번역해 보던 어느 날 저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어느 시간과 감정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꽤 괜찮은 삶이겠구나라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지원군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 내가 이런 시간들을 이런 마음으로 보냈구나라고 명확히 표현할 수 있다면 삶의 시간들을 조금은 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은유 작가님은 그랬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라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받고 깊은 상처를 입은 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픔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분의 요지였다. 그분들을 응원하겠지만 대변할 정도로 고결한 이상을 갖고 있지 못하고 고작 나의 삶을 건사할 뿐인 나는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한다. 나의 삶에도 나의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살면서 느끼는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온갖 희로애락의 시간을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이겨낼 수 있을지 나는 아직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글쓰기' 자체에 완성은 없겠지만 나의 글쓰기의 끝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 글 쓰기의 관해 당위성에 관해 고민해 본 시간이 있었고, 근시안적이지만 계획을 하나 세웠다. 무엇을 위함인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일단 성의껏 진지하게 100편의 글은 써보자는 계획이었다. 백번이라는 회차가 마법의 숫자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바를 기대해 본다면 조금이나마 내가 쓰기를 원하는 바와 나의 고유성이 이전보다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쓰다 보면 내가 무엇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조금씩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안에 있겠지만 나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만의 이야기들을.

"또 흔히 나는 글재주가 없다, 개성이 없다고 말하는데 많이 써보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나의 삶을 숙고하고 나의 경험을 나의 언어로 말하는 훈련을 반복하기 전에는 '글재주'와 '고유성'은 드러나지 않고 드러날 수 도 없다"(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아직 충분하지 않다. 나는 아직도 더 깊이 나의 삶을 숙고하고 나의 언어로 써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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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공간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레 가정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그 결과를 미리 고민하는 나는 다시 생각한다. 계획한 글을 써본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계획했던 바를 끝냈음에도 글쓰기로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고 무엇인가 얻지도 이루지도 못한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만약 이 일을 멈춘다면 언제 멈춰야 할 것인가. 나의 글쓰기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위로가 되는 한 구절을 만났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준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앞서 고민하지 않도록 한다. 오늘은 그저 오늘의 최선으로 오늘의 글을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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