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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Jul 12. 2020

조금 더 맛있는 디자인이라면 어땠을까?

편집자의 눈으로 책읽기

철학은 재미없다. 아니,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 역사학, 수학 등등 대부분의 '학문'은 문외한에게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하다. 각 학문마다 '참맛'을 느끼기까지 진입장벽이 존재하는데, 시중에 나오는 대중교양서들은 그 장벽을 낮추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에 빗대어 학문적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SF영화를 가지고 과학을 설명하거나(최근에 『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라는 책을 읽었다), 여행을 키워드로 역사학·지역학·인류학을 탐구하거나(『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모든 여행인문책의 워너비가 됐다). 『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는 음식(요리)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바탕으로 철학을 이야기하려 시도한다.


그러한 시도의 효과는 뛰어났다. 그 재미없는 철학을 이토록 맛있게 풀어내다니. 사실 알기 쉬운 무언가에 빗대어 알기 어려운 학문을 설명하려는 다른 몇몇 책들을 읽다 보면 아쉬움이 남곤 했다. 이를테면 영화를 가지고 과학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 보면, '굳이 영화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학에 몰빵한 서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를 20퍼센트 과학을 80퍼센트 비중으로 다루는데, 이걸 읽을 바에야 차라리 과학을 99퍼센트 다룬 정통 과학책을 읽을 걸 내가 이러려고 교양서를 집어들었나 괜히 자괴감 들고 괴롭고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는 음식과 철학을 50대 50으로, 아니 가끔은 음식에 비중을 더 할애해서 교양서로서의 맛을 제대로 살려냈다. "철학 에세이"이자 훌륭한 '요리 에세이'다. 그래서 철학에 막연히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대중교양서로서 제격이다.

넘나 심심한 도비라

그런데 이 책의 메인 컬러로 들어간 녹색(별색)은 그닥 맛있는 색깔로는 보이지 않는다. 풀떼기 샐러드나 민트초코(치약초코)가 연상돼서, 뭐 이것들도 음식으로서 나쁘진 않지만, 메인디시(main dish)로는 부족하다. 뜨끈~한 국밥, 마이야르 풍미가 한껏 살아난 스테이크, 알록달록 샌드위치, 뭐 이런 음식들을 떠올리게 하는 다채로운 이미지를 표지에서 보여줬다면 책도 더 맛있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글은 맛있게 읽었는데 전반적인 디자인은 '미미(美味)'보다는 그저 '덤덤'했다. 본문에서 각 챕터를 크게 구분하는 페이지를 가리켜 '도비라(표제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 특히 이 도비라가… 녹색 바탕에 체크무늬 실선과 세로쓰기 제목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조금 많이 휑해 보였다.      

뒤표지 센스 개센스 이센스

『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뒤표지는 마음에 들었다. 보통 책의 뒤표지는 책을 홍보하기 위한 문구(광고 카피)가 들어간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카피 작성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편집자가 다소 덤덤하게 카피를 짜면 사장님은 그게 무슨 광고냐며 어떻게든 자극적으로 양념을 치라고 훈수를 둔다. 고민하는 편집자는 별 수 없이 사장님의 뜻대로 문구를 작성하고, 자신이 생각하던 콘셉트와 감성에 어울리지 않는 (독자의 취향보다는 사장님의 취향을 반영한) 선동적인 카피를 집어넣고 눈물을 훔치곤 한다. 근데 이 책의 뒤표지 카피를 보면 이렇다. "철학이 딱히 어려운 건 아니야. 치킨을 먹다가도 생각날 수 있지." 와~ 이 얼마나 자극적이지 않고 덤덤한(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카피인가! 게다가 또 너무 심심할까봐 가운데에 치킨 그림을 조그맣게 넣었는데, 이게 눈물점 같은 매력 포인트다.


더불어 아래쪽에 무슨 국수 면발처럼 만들어놓은 바코드 디자인도 정말 센스 있다. 어차피 바코드는 각각의 선과 사이사이 두께만 일정하게 하면 위아래로는 마음껏 늘릴 수 있다.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12)이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에코의서재, 2008) 등등 바코드 또한 디자인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책들을 보면 '뒤표지까지 세세하게 신경쓰는' 디자이너의 모습이 상상된다.

첫줄과 둘째줄 사이 간격이 살짝 더 넓다. 불편쓰.

칭찬을 했으니 이제 하나 더 비판을 해보자면, 본문에서 글이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행간이 조금 이상하다. 각 문장의 줄과 줄 사이의 간격을 행간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첫줄과 둘째줄 사이의 행간이 다른 곳들에 비해 미묘하게 넓은 걸 알 수 있다. 읔;; 굉장히 사소하지만 괜히 불편해진다. 이건 '의도'라기보다는 그저 실수로 보인다. 책을 편집하는 프로그램인 인디자인(ID)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왜 이런 실수가 나왔는지 대충 짐작해볼 수 있다. 음… 아마도 첫줄 왼쪽에 들어가는 포카락(숟가락과 포크) 이미지 때문에 행간이 어긋나버린 듯하다. 그런데 이런 실수가 글이 시작할 때마다 계속 나타난다. 매번 새로운 챕터를 읽을 때마다, 그 미묘한 차이에서 나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하시라. 본문에서 주로 아래쪽에 쪽수와 챕터 제목 정보가 들어가는 부분을 '하시라(면주)'라고 한다. 이 책은 아래쪽 여백이 유난히 넓어서 하시라에 덩그러니 쪽수(032)와 챕터 제목(맛있으면 0칼로리?)만 넣으려니 너무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굵은 선을 쭈욱 그어놨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 선이 너무 굵어서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아래쪽으로 눈길이 간다. 사실 하시라는 본문에서 그렇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그래서 보통 책에서 하시라는 아래쪽에 조그맣게 들어가서 독자가 책을 읽어나갈 때 의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 책의 하시라는 조금 생뚱맞게 튄다. 선의 굵기만 살짝 더 얇았다면 덜 튀지 않았을까 싶다.




#한줄평 어떻게 철학까지 사랑하겠어, 음식을 사랑하는 거지…, 근데 읽다 보니 철학도 재밌다(☆★★★★)


전반적으로 덤덤한 디자인을 아쉬운 점으로 꼽긴 했지만, 그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덤덤한 점도 뭐…, 귀엽게 보인다(개인적으로 녹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더불어 나는 민트초코도 좋아한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게 또 한편으로 매력이다. 무조건 쉽다고 좋은 교양서가 되진 않는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독자가 학문에 다가갈 수 있도록(다가가고 싶어지도록) 동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대중교양서의 핵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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